작은 문이 열리고
하늘 가득 어둠이 달려갑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저 끄트머리까지
때늦은 저녁 안개가 겨우 쫓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오랜만에
내 마음의
은하수를 건넌
별똥별 하나
주인의 안부를 전합니다.
1. 오랜만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동심에 젖어보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반가운 손님이 다녀갔습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랠 겸 공원을 산책하고 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공원의 풍경이 한없이 을씨년스러워 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일년 중 지금이 가장 쓸쓸한 계절인 듯 싶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손님이 다녀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의 모습에 감탄을 한 나인데 말입니다. 참 사람의 마음은 간사합니다. 자기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보이는 사물까지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달라 보이니 말입니다.
살다보면 이렇듯 어처구니없게도 얼토당토 않는 자기 암시에 빠져서 혼자 으쓱하고 혼자 실망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나는 원래 이래야 한다느니’ ‘우리 집은 항상 이렇다느니’ ‘우리 가정은 본래가 어떻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식의 생각 말입니다.
문제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봄이 아름답고 따뜻하면 뭐합니까? 그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좋고 나쁨을 가릴 것 없이 풍경도 변하는 것이고 올해는 작년과 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어떻게 보입니까? 그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냄새가 아니라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향기는 향기를 느끼는 사람을 그 향기에게로 모여들게 합니다.
2. 집 앞 뜰에 수선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봄의 전령인 수선화가 가장 먼저 우리 집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사는 집이니까 꽃도 빨리 핀다’고 자랑을 늘어놓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아름다운 꽃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름다운 자태에 비해 향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비록 저 꽃은 향기는 없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기쁘게 하고는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너는 무엇이냐? 향기는 고사하고 냄새를 피우는 사람, 너와 나를 갈라놓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취를 발산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조차 아름다움은커녕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냄새가 아니라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향기는 향기를 느끼는 사람을 그 향기에게로 모여들게 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나는 향기를 풍기는 사람인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인가?
3.산을 오르다 보면 오를수록 좁아지는 것이 있지만 반대로 오르면 오를수록 넓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시야가 그것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세계는 오를수록 넓어지게 마련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그의 품은 넓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윽고 정상에 서면 동서남북 상하좌우가 모두 그 품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만물이 여아일체(與我一體)라, 모든 것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는 자리가 바로 신앙인의 행선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인양 고집스런 착각을 움켜잡고 있는 이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도대체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웠기에 그런 결과가 생기는 것이겠습니까? 제대로 배웠다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앙의 넓이의 세계가 아니라 높이 또는 깊이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보다 깊이 아는 게 더 중요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그래서 깊이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넓어집니다. 높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듯이 깊이 들어갈수록 그 품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힘들지만 즐거운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축복입니다. 더 높게, 더 가난하고 더 넉넉하게, 더 깊이, 더 고요하고 더 너그럽게, 신앙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아무 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공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따사로움을 알았다
질척질척 아직은 이른 계절인데
새들은 고개를 들고
봄이 오기를 꿈꾸듯 기다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
보랏빛 키 작은 꽃들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공원을 거닐며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 것도 키울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큐 가든(Kew Garden)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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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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