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올수록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한 거시 경제지표는 안정된 듯 보이지만 소비와 고용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체감경기는 이와는 달리 혹한의 영하권에 빠져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요일인 15일 낮 서울 중구 무교동 J식당. 토요일 손님이 급격히 줄면서 전날 들여놓은 물수건 160개 중 120여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식당 물수건 공급업체인 서울위생 장진균 소장(49)은 작년에 비해 물수건 사용량이 3분의 1정도 줄었다며 오늘 방문한 40여개의 가게 중 10여 군데는 물수건을 아예 추가주문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모습도 외환위기 때와 흡사하다. 한 그릇에 4천5백원짜리 북어국, 된장찌개를 파는 서울 중구의 식당들은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오후 1시 직전까지도 10∼20명이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1인당 1만5천원선인 복국집의 경우 예약을 안 해도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 C복집 사장은 복국을 먹는 손님들은 다소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런데도 손님이 30% 이상 줄어든 것을 보면 유흥업소의 술손님이 크게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심야 술손님을 상대로 한 택시의 이른바 따블요금도 사라지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이나 고양시 일산 등 신도시를 갈 때도 추가요금 없이 미터기 요금만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 I택시 회사는 경영난으로 택시 95대 중 12대 가량이 쉬고있으며 사납금을 못 채우는 운전사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밝혔다.
유행을 타는 휴대전화 가게들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는 윤희원씨(33)는 작년 이맘때 하루 15∼20대를 팔았으나 지금은 겨우 3대 정도라고 말했다.
주말 저녁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토요일인데도 매장 안은 적막감이 돌았다. 여성정장 가게주인 박선남씨(26·여)는 작년에는 금요일 저녁이면 20여벌 정도를 팔았는데 오늘은 두 벌밖에 못 팔았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외환 문제는 해결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금융과 우량기업에까지 외국 자본이 대거 진출하면서 고용에 대한 불안심리가 더 확산되고 있다는 것.
푸르덴셜생명보험 강신우 전무는 금융기관들이 개인대출을 까다롭게 적용할 경우 내년 상반기에 개인파산이 대량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체감경기지표는 외환위기 이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소 박동철 실장은 기업들이 불투명한 경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줄임으로써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비가 움츠러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