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에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조영명(50·가명)씨는 2000년 경찰에 붙잡혀 한국으로 추방당했다. 온 가족을 미국에 남겨둔 채였다.
이민간 지 26년 만에 돌아온 조씨는 서울의 한 선교회 쉼터에서 6개월의 적응기간을 거친 뒤 식당 주방에 일자리를 얻어 독립했다. 그러나 미국식 생활방식이 몸에 밴 탓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누가 말을 걸어오면 무의식적으로 영어로 대답하는 식이었다. 결국 조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잃고, 알코올중독으로 거리를 헤매다 지난해 쉼터로 다시 돌아왔다.
생후 8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정현민(32·가명)씨는 마약 범죄로 실형을 살고, 2002년 초 추방당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한국말을 전혀 모를 뿐더러 한국 음식도 처음 맛봤다. 친인척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전화 영어강사로 일해 한 달에 30만원을 번다. 15만원은 고시원 방값을 내고 나머지 15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조씨나 정씨처럼 미국에서 시민권자가 아닌 신분으로 이민생활을 하던 한국인들이 범죄 등을 저질러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수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법무부 통계로, 미국에서 강제 추방된 한국인은 올 상반기에만 193명에 이른다. 2001년 116명이던 강제추방자가 지난해에는 316명으로 급증했다. 1996년 미국의 영주권 소유 범죄자 추방법이 강화되기 전에는 한 해 100명을 밑돌았다.
추방자 대부분은 한국의 친인척이나 가족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따라서 낯선 한국사회에서 생활고를 겪다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1992년부터 추방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세계십자가선교회 안일권 목사는 “미국에서 추방된 청년이 술김에 폭력을 휘둘러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범죄자 추방법 적용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추방자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항경찰대에서 범죄경력 등을 간단하게 조사한 뒤 동사무소 등을 통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해주는 게 전부다. 정부에서 마련한 쉼터나 적응훈련 프로그램은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에서 추방자들의 한국 입국 상황을 모두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 여행자와 같은 절차를 거쳐 들어오는 추방자들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6년째 강제 추방자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전은찬 디딤돌선교회 목사는 “2~3년 전부터는 오갈 데 없는 추방자들이 들어와도 공항경찰대 쪽에서 쉼터로 연결해주지 않는다”며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