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4일 영국 최대 유통기업인 ‘테스코(Tesco)’의 런던 외곽 벡턴지역 매장. 진열된 상품들에 온통 ‘테스코’ 로고가 붙어 있어, 자칫 테스코가 제조업을 겸하는 회사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25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에서 판매하는 4만여개 상품 중 절반 이상이 PB(자체 브랜드·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납품하게 하는 상품). 매장에서 만난 손님 베티 쿠퍼(64·주부)씨는 “똑같은 회사의 똑같은 제품도 여기가 훨씬 싸다”며 “선택의 폭이 넓고 신선해 1주일에 3~4번 들른다”고 말했다.
‘유통업이 제조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높지만, 선진 유통시장에서 유통업의 파워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사실상 물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테스코는 PB를 품질에 따라 ‘파이니스트(Finest)’, ‘스탠더드(Standard)’, ‘밸류(Value)’ 등 3단계로 나눠, 자체 기획으로 제조업체에 주문한다. 품목도 우유·밀가루·쿠키·콜라 등 거의 모든 식료품과, 포크·나이프·머그컵·카메라·학용품 등 비식료품까지 구분이 없다. 전체 매출에서 PB상품이 50%를 차지한다.
제조업체들은 자체 기획력과 가격 결정력을 잃게 되지만 막강한 구매력을 가진 테스코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1993년 PB를 가장 먼저 도입한 테스코는 PB에 힘입어 영국 식료품 시장에서 점유율 3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테스코를 포기하는 식료품 업체는 30%의 시장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인구 5900만명인 영국에서 테스코의 클럽카드 회원은 1100만명이나 된다. 한 가정에 한 명꼴로 회원카드를 가진 유통업체를 제조업체가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테스코는 이 같은 막강한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혁신 노력을 계속해 왔다. PB상품, 클럽카드, 24시간영업제 등을 모두 영국업계 최초로 테스코가 도입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소매금융 서비스, 이동통신 서비스 등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특급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테스코 클럽카드를 가진 고객은 매장에서 현금인출·예금을 할 수 있고, 보험이나 대출 상품에도 가입할 수 있다. 테스코는 1999년 5월부터 삼성물산과 합작으로 한국 할인점 시장에 ‘홈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진출해 전국 36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03년 6월 업계 최초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했고, ‘홈플러스 프리미엄’, ‘홈플러스’, ‘홈플러스 알뜰’ 등 3개 라인의 PB를 운영하는 등 영국 테스코의 경영 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