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태어나 외국에 생활기반을 둔 이중국적자라도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일시 귀국했을 때 출국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출국정지는 권한 남용’이라고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대법원 판결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특별8부는 17일 결혼 준비를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출국정지를 당한 미국 시민권자 박모(30)씨가 ‘출국을 정지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병역의무를 지게 된 1993년 이후 40여 차례 우리나라를 드나들면서 징병검사를 받지 않은 채 미국인 행세를 해 온 점, 미국 영주권 취득을 이유로 병역면제 소송을 내는 등 병역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점 등을 감안할 때 원고는 출국할 경우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36세까지는 귀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출국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병역의무 이행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만큼 출국정지 조치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국내 D화학 사장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박씨는 어린 시절을 우리나라에서 보내다가 91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이중국적을 유지해 왔다.
박씨는 미국 이름을 사용, 병무청의 단속을 피하면서 1년에 3~4 차례 한국을 드나들었으며, 2003년 2월 결혼 준비를 위해 입국했다가 법무부에 의해 출국정지 처분을 당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병역의무 대상자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에 직장 등 생활기반을 둔 점을 감안, 병역의무 이행 확보라는 공공의 이익에 비해 원고가 입게 된 거주이전의 자유 제한 등 불이익이 너무 크다”며 법무부의 재량권 남용으로 판단, 원고승소 판결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