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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 공원에서,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난다.
코리안위클리  2005/06/16, 02:06:35   
편지를 쓰자
가슴에 사랑을 그리듯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네가 있나니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편지를 쓰자

- 편지를 쓰자 -

자주 공원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편지를 씁니다. 저쪽 공원 입구에서부터 내가 앉아 있는 곳을 지나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글을 씁니다. 아주 운이 좋으면 예쁜 금발의 아가씨 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가끔은 개가 편지의 주인일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눈앞을 사라지는 시간은 5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간혹 20분 정도 걸려서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음미하듯이 내 곁을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래도록 그 사람을 향해 편지를 씁니다. 그러는 동안 사방은 오롯이 적막해지고, 그 시간에는 어디선가 꼭 들려오곤 하던 삶을 향해 내뱉는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만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공원에서,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직 한 번도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온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이상하다는 듯이 힐끔거리거나 마치 친한 사이처럼 눈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있지만, 아무도 왜 자기를 향해 편지를 쓰느냐고 물어온 적이 없습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무엇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묻지 않습니다. 그들의 집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생각할 뿐입니다. 저쪽 공원 옆으로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집들, 그 집들 중의 어느 하나, 혹은 어느 한 칸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남루한 옷차림과 어깨위로 살비늘 같이 미세한 가루가 우울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그 사람은 어쩌면 그 집들 중의 어느 한 귀퉁이도 점유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그 사람의 사는 경우를 미루어 짐작해버리는 고착된 고정관념을 나 역시 가지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어디든, 가는 곳이 어디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우연히 그 시간에 나타나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과, 공원을 가로질러 공원의 후미진 벤치에까지 달려온 바람이 나를 붙들어 세우는 시간에,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초록빛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초록빛으로 편지를 쓰는 나를,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다시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다시 이곳을 지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기다림을 배웁니다. 산다는 것의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을 뿐 아니라 시를 쓰기도 합니다.

지금 저 여자는 꽤 오래 내 시야에 있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십분. 여자가 몇 분 더 서 있게 될지 금방이라도 내 곁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져버릴지 알 수 없습니다. 여자가 눈 앞에 보이는 동안, 나는 여자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그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지만 공원은 어느새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고, 지금은 푸른 나뭇잎들이 조금은 거친 바람에 흔들리고 있네요. 마치 세월을 알리는 손짓 같네요.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변하는 것들… 혹시 심심한 하루를 보내시나요? 스쳐 지나지 말고 지긋이 바라보세요. 늘 지나는 길… 늘 가는 공원… 늘 보던 사람… 어딘가 달라져 있는 걸 확인해 보세요…’

내 편지는 언제나 머릿속에서 시작해 머릿속에서 끝납니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주 짧거나 이십 분 정도까지 허용되는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나는 삶에 대해 그윽한 기분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꽤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는 ‘내가 이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집니다’라고 짧게 끝나기도 하지만 꽤 길게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읽을 때마다 매번 엄습하는 서늘한 기운을 주는 시가 있습니다.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시가 쓰여졌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놀랍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래, 이미 그때도 세상은 시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뭐 새삼스러운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즐거운 편지를 읽을 때마다 시베리아 벌판을 날아서 내가 처음 이 도시로 왔을 때를 생각해내곤 합니다. 눈앞에 혼란스럽게 펼쳐지던 그 풍경들. 이제 나는 그 풍경 속의 작은 점이 된 지 오래이고, 더 이상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놀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여진 한 편의 시가 여전히 세상에 유효한 감정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정도로 길어지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한 십분 정도 내 눈앞에 있었는데 나는 대충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할아버지, 저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이제 40대 중반에 가깝습니다. 홀로 맨바닥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쓸쓸함이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해체된 의식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너울너울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당신도 그렇습니까?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건 조금씩 어긋나기 마련인 허술한 벽돌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지겨워질 때마다 투덜거리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언제쯤이면 당신처럼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얼굴 가득 불만을 품은 체 지나가는 소녀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도 있습니다.
‘어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 왜 어머니는 저렇게 모든 일을 꼼꼼히 챙기실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어른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든 아들과 딸들은 또 그렇게 어머니처럼 되니까. 젊은이는 아무리 성실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고, 나이 든 사람은 아무리 불성실해지려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처럼.’

또 한사람이 내 곁을 지나 뒷모습을 보이면서 묵묵히 자신만의 세상을 향해 사라집니다. 나는 입 속으로 재빨리 그 사람에게 못다한 말을 마무리합니다.
‘리처드 바크의 <영혼의 동반자>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혼의 동반자를 지닌 사람은 삶의 맛과 의미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생명의 환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영혼의 동반자를 만난 듯 하다가도 그것이 아닌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당신은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를 가졌습니까? 있다면 그 영혼의 동반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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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다 림  

나 당신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당신 마침내 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리는 것은 바라는 것
기다리는 것은 견디는 것
기다리는 것은 끝내 믿는 것
오래 전부터 나의 삶은 당신을 기다렸고
앞으로 나의 세월도 당신을 바라리니

오, 내가 당신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죽어 갈 수만 있다면
당신 마침내 오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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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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