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했다. 창당 이래 최초의 3기 연속 집권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도 세번째 임기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압승을 거뒀던 1997년, 2001년 총선 때와는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야권과의 의석차가 크게 줄어든 까닭이다. 블레어가 머지 않아 총리직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넘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절반의 승리’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선거 의미=노동당이 ‘이긴’ 것은 경제 덕, ‘크게 이기지 못한’ 것은 이라크전 탓이다. 노동당 집권 8년간 영국 경제는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도 비교적 낮게 유지됐다.
하지만 반전·반블레어 정서가 압승으로 가는 길목을 막았다.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란 오명까지 들을 만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협력했다. 선거 막바지에는 그가 이라크전의 불법성을 알고도 전쟁을 추진했다는 비밀문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전 정서가 짙은 유권자들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보수당 역시 이라크 파병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블레어의 앞날=노동당의 의석 감소로 블레어 총리의 리더십은 상당한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블레어의 미래에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로이터통신>, “블레어는 세번째 임기에 이전과 같은 지도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앤서니 킹 에섹스대 교수)이란 관측이 줄을 잇고 있다.
당장 이라크 철군 문제는 ‘발등의 불’이 될 수밖에 없다. 밑빠진 독처럼 재정에 큰 압박이 되고 있는 국가의료제도(NHS) 개혁 또한 서둘러야 할 과제다. 내년 중 실시될 유럽헌법 비준 국민투표를 앞두고 유럽통합에 부정적인 국민들도 설득해야 한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같은 암초 탓에 블레어 체제가 조기 좌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케빈 테익스턴 리즈대 교수는 “그가 1년~1년반 안에 (총리직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