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플러싱에서 건축일을 하던 문철선씨는 지난해 여름 축구시합 도중 뇌출혈 증세를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한달만에 숨졌다. 위급한 상태였던 문씨가 고통을 겪으면서도 집중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데는 미국 의료시스템 및 의료보험 제도를 잘 알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많은 이민자 단체들은 의사소통의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뉴욕이민자연맹을 비롯한 뉴욕지역의 이민자 옹호단체들은 21일 병원들이 통역서비스 제공의무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문씨의 경우처럼 피해를 겪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뉴욕시내 4개 병원을 제소했다. 제소된 병원은 문씨가 치료를 받았던 플러싱, 자메이카 병원을 비롯해 브루크데일 대학병원과 세인트 빈센트 스테이튼 아일랜드 병원 등이다.
이들이 제출한 소장에는 뉴욕한인봉사센터를 비롯한 이민자 단체들이 지난 2년간 수집한 병원들의 통역 서비스 부실 사례가 지적돼 있다. 이 조사에서 플러싱에 살고 있는 한인응답자들은 영어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 가운데 40%가 통역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47%는 통역서비스가 부적절했다고 응답했다.
한인봉사센터 김광석 회장은 “문씨의 경우 우리에게 미리 연락했더라도 통역서비스를 받아 의사에게 증세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을테고 그랬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회장은 “뉴욕주 규정은 병원이 사용인구 2% 이상인 언어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21일자에 “특히 한국어와 스페인어 사용자들이 언어 장벽 때문에 진료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민자 단체들이 수집한 통역서비스 부실사례를 보도했다.
‘나옐리’라는 여성은 두차례의 자궁외 임신으로 나팔관을 제거했지만 수술에서 회복된 뒤에야 자신이 다시는 임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됐음을 알게 됐다.
건축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급히 절단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통역이 없어 자신의 7살난 사촌을 통해 의사와 의견을 교환하는 장면도 이민자 옹호단체 조사원들에게 목격됐다. 소장은 “당시 소년은 ‘의사들이 자르겠다고 하는 것이 발인지 발가락인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환자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고 밝혔다.
이민자 옹호단체들의 제소에 대해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법무장관의 대변인은 이미 이들 병원의 통역 서비스 부실문제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면서 “우리는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환자들의 의료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대단히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한인봉사센터 김회장은 “이번 소송에서 병원측의 법규 위반 판결이 내려지게 되면 문씨와 같은 개별 피해자들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