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만 되면 ‘철새본능’
민주당 전용학, 자민련 이완구 의원의 한나라당행으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합집산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당적 변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7년 원내 소수파로서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회의가 98년 한 해만 한나라당 의원 28명을 입당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당시 한나라당 탈당 의원은 이구동성으로 “IMF 위기극복을 위해…”라고 말했지만 대부분은 비리 면책, 자리 보장 등의 약속을 받았다는 설이 퍼졌다.
대선을 앞둔 의원들의 집단적 이동은 특히 심했다. 1997년 9월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대선 후보 경선에 불복,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자 신한국당은 이에 맞서 11월 조순씨가 이끄는 통합민주당과 합당,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국민신당 창당에는 신한국당과 무소속 의원 8명이 동참했다. 국민신당의 6명은 대선 후 국민회의로 흡수됐다. 이 과정에서 김학원 의원은 김종필 총재의 지역구(충남 부여)를 물려받는 조건으로 자민련에 입당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야당인 한나라당을 탈당하거나 출당조치된 의원은 모두 47명에 이른다. 한나라당 김명섭 의원 등 20명이 민주당 전신인 국민회의로 이적했고, 김종호 의원 등 14명이 공동 여당인 자민련으로 옮겼다. 김종호 의원은 그후 자민련 몫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 직전 공천에서 탈락해 민국당 창당 멤버로 탈당한 경우가 7명, 무소속으로 남은 경우가 6명이었다.
이 중 총선에서 낙선하지 않은 경우는 이한동, 김명섭, 유용태, 박종우, 송훈석 의원 등 11명인데, 전국구를 제외하면 9명에 불과하다.
92년 대선전에도 비슷했다. 이종찬씨의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포기로 촉발된 탈당사태로 이씨 중심의 새한국당이 탄생했다. 박철언, 김용환, 이자헌)씨 등 당시 중진 의원 5명이 가세, 한때 기세를 올리는 듯했으나 이내 정주영씨의 국민당으로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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