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현행정구역은 일제 유물… 지역발전 막아’ 공감
속으론 대선 겨냥 영·호남 상대 텃밭서 교두보 만들기
여야가 18일 행정구역 체제 개편 논의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특별(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의 3단계로 돼 있는 3단계 지방행정체계를 ‘광역도시→기초행정구역’의 2단계로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의는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다만 여러 현실적 제약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데 여야가 똑같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여야는 겉으론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한다. 행정구역 개편의 문제는 행정서비스를 한 차원 높이려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정치적 이유’를 떼어놓고 보긴 어렵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최근 부쩍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당은 1지역구 당 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 대신 3~6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하자는 입장이다. 이 문제가 행정구역 개편과 맞물릴 경우 정치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문희상 의장 등 여당 지도부에 “선거구제를 연구해달라”고 주문했고, 문의장도 “올해는 개헌보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의 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영남공략을 하려면 결국 지역감정이라는 벽을 허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도를 없애는 형식 파괴가 필요하다고 본다. 경상도와 전라도 개념을 없애야 ‘지방권력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광역도시 아래의 기초행정구역 단체장을 선거가 아닌 국가 임명직으로 바꾸는 것도 야당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 지금까진 기초단체장도 주민 선거로 뽑았다.
한나라당 역시 정치적 셈법이 있다. 행정도시 건설로 충청권이 여권 쪽으로 기울었고, 호남에선 10% 이상을 득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경남 하동군과 전남 구례군이 하나로 묶이면, 특정 지역에서 10%도 못 얻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혁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야는 각각 상대방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눈치다. 특히 한나라당은 여당이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연계하려 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한나라당 내에선 기초행정구역 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자는 여당 쪽 주장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