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자국의 업적을 과소평가하고, 국제적 위상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이런 현상을 극복할 길은 무엇일까.
첫째로 고려할 점은 지정학적 입지와 그에 따른 역사적 경험이다. 강대국들을 이웃으로 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을 약소국으로 느끼기 쉽다. 그런 의식의 이면에는 강대국들을 견제할 큰 국력을 추구하려는 의식적·무의식적 의욕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같은 자기 능력의 과소평가와 자체 목표의 과대 설정이 한국인의 자부심에 큰 손상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한국의 객관적 입지는 강력하다. 국민총생산량으로 보나 내가 만든 국력지표로 보나 한국은 현재 세계 10대 강국이다. 인구 규모만 보아도 한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주변국들의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한국의 남북을 통합한 인구가 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앞선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미국·중국·일본보다 큰 나라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한 나라의 안보와 독립은 절대적 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 열강들의 상호 견제에 의해 결정된다. 인구는 적지만 번영을 누리고 있는 서유럽의 나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이 취할 최선의 길은 ‘최강국’을 지향하는 꿈이나 그 이면의 ‘약소국 신드롬‘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국제관을 기르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대 강국인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응당한 자부심과 정신적인 여유를 길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감상적인 통일론이나 극단의 배타주의적인 반미·반일 감정도 극복해야 할 과제 중에 하나다.
둘째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이 지난 반세기에 이룩한 정치적 민주화의 업적이나 경제성장은 자랑스러운 점이 많지만 국민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높은 이상이나 목표는 발전을 위해 노력할 심리적 바탕이라는 점에선 바람직하지만 극단의 자기 비하로 빠지면 정치적 불신이나 사회적 소외현상을 낳을 수 있다. 이상이나 판단의 표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도덕적·명분주의적 판단의 기준을 때에 따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가장 직선적인 해법은 객관적인 입지를 바로 볼 수 있는 국민의 판단력과 현실에 맞는 목표를 세울 줄 아는 지혜를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고, 이를 주도할 지도층의 의식구조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그 첫 출발점은 세계 10대 강국에 걸맞은 자부심과 아량, 정신적인 여유를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