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내각 핵심관료들이 이라크전쟁 발발 9개월 전에 미국이 이라크 정권교체를 위해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영국 <BBC>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오는 5월로 총선이 예정된 가운데 나온 이번 보도로 지난해 블레어 총리의 이라크 정보 조작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BBC>와 정부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BBC>방송은 이날 방영된 ‘이라크와 토니 그리고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전쟁 전으로 가는 과정과 전쟁이 끝난 뒤 국민들에게 줄기차게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BBC>는 영국 정보기관인 해외정보국(MI6)의 책임자인 리처드 디어러브 국장이 지난 2002년 7월23일 블레어 총리와 핵심 각료들에게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확정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당시 워싱턴에서 미국 정보당국과 비밀 협의를 하고 돌아온 디어러브 국장은 블레어 총리 등에게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이라크를 치기로 결정했다”고 보고했다는 것. 디어러브 국장의 이런 보고는 이라크 전쟁 발발(2003년 3월20일)보다 9개월 앞선 시점에 이뤄진 것이다.
<BBC>는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블레어 총리는 전쟁 발발 11개월 전인 2002년 4월 이미 전쟁이 불가피하며 미국의 정책목표는 대량살상무기(WMD)제거가 아니라 정권교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반발, 장관직을 사임했던 로빈 쿡 전 외무장관은 인터뷰에서 “블레어 총리는 자신이 부시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영국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라는 점을 입증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쿡 전 외무장관은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의 무장해제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5월 <BBC>방송은 “영국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이라크의 위협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보기관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보도했으나 ‘오보’라는 영국정부의 주장에 밀려, 지난해 이사장과 사장이 동반사퇴하는 최대의 수모를 겪었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