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 작업을 승리로 매듭지음에 따라 이번 대선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 후보간의 사실상 양자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선지형이 양자 구도로 짜인 것은 지난 1971년 7대 대통령선거(박정희 대 김대중 후보) 이래 31년 만이다. 그 뒤 87, 92, 97년 세 차례 더 보통선거 형태의 대선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유력한 제3, 제4후보가 등장해 때로는 야권 분열, 때로는 여권 분열이 선거의 기본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회창-노무현 양강 대결 구도가 선명하게 떠오른 데다, 두 후보가 대변하는 세력과 정책, 세대 등이 선명한 차이를 지녀 과거와 전혀 다른 선거전이 예고되고 있다. 이를테면 60대 후반인 이후보가 구여권 등 전통적 보수계층을 기반으로 보수성향의 정책노선을 제시하고 나선 반면에, 50대인 노후보는 전통적 야당 지지세력과 젊은 층을 기반으로 개혁색채 짙은 정책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보수 대 진보의 시각을 토대로, 이번 선거를 일종의 이념 대립 구도로 몰고가려는 움직임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낡은 정치 대 새 정치의 대결’이라며 신구 세력간 세대교체를 선거전략의 기본축으로 가다듬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보수·진보 구도를 바탕으로 서구적 의미의 정책 대결보다는 색깔 공방으로 선거쟁점을 끌고가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노후보가 영남 출신이란 점은 색깔 공방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지 의문스럽게 하는 대목이라는 관측도 있다. 과거의 색깔 시비는 기본적으로 ‘디제이=호남=색깔’이라는 전근대적 도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책과 세대 대결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것은 거꾸로 우리 선거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꼽혀왔던 전통적 지역구도의 해체 가능성을 일부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회창 후보가 영남에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지만 영남 출신이 아니며, 노후보가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부산 출신이란 점이 투표에 어떤 형태로 반영될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지역구도의 완화 가능성과 관련해선 충청권의 변화 기류도 한 단서로 꼽힌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이인제 민주당 의원을 두고, 이·노후보 양쪽 모두가 ‘도와준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발목을 잡히면서까지 끌어들이진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 협력위한 악수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단일 후보로 결정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왼쪽)는 25일 국회에서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만나 12월19일의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회동에서 정대표는 노후보에게서 선대위원장직을 제의받고 원칙적 수용 의사를 밝히고, “당 대표로서 다른 당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는 것이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하고, 당무회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28일 다시 만나 이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