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아무 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공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따사로움을 알았다
질척질척 아직은 이른 계절인데
새들은 고개를 들고 봄이 오기를
꿈꾸듯 기다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
보랏빛 키 작은 꽃들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공원을 거닐며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 것도 키울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시 ‘큐 가든(Kew Garden’에서>
2.
삼국지도 여러 번 읽어보고 처세술에 관한 책도 꽤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단순하다 못해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자매 한 분이 찾아 와서 상담 겸 하소연을 했습니다. 듣고 보니 상대방이 ‘나쁜 놈’이었습니다.
‘연약한 여자에게 거짓말이나 하고 속은 벤댕이처럼 좁아 터져 가지고…’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상대방의 잘못을 깨 털듯이 다 텁니다. 듣는 나는 점점 얼굴이 붉어집니다.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갑니다. 자매와 함께 그 놈은 ‘나쁜 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밀이라며 몇 번이나 확인하며 자매는 돌아갔습니다.
다음주일 예배당에서 그 남자가 나를 만나면 슬금슬금 피해갑니다. 설교시간에도 얼굴을 들고 있지 않습니다. 예배후 인사도 안하고 도망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는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비밀이 샌 모양입니다.
자매를 불러서 마주 앉았습니다. 나를 만나고 간 즉시 서로 풀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목사님께 상담을 했는데 너를 ‘나쁜 놈’이라고 하셨어.”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겁니다. 지들은 화해하고 없던 일이 되고, 목사만 남의 싸움에 끼어 우습게 된 겁니다.
울며 하소연 하길래 동조했을 뿐입니다. 나쁜 놈이라 하기에 나도 나쁜 놈이라 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단순한 머리에 주먹질만 했습니다.
결혼 5년차 딸아이의 엄마가 울고 왔습니다. 신문 보던 남편이 갑자기 신문을 말아서 머리를 때렸다고 이릅니다. 서러웠던지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립니다. 이야기를 정리해 봅시다.
“남편이 신문을 읽는데 당신이 잔소리를 한거야. 참고 참던 남편이 신문을 접고 홧김에 저리 가라고 신문으로 밀친 거야. 그때 머리에 스친 거지. 다른 사람 같으면 주먹이 날아갔을 텐데.”
이제는 절대 안 속아 속으로 다짐 또 다짐하며 결론을 내려 줍니다.
“그래도 당신 남편은 좋은 사람이야.”
‘속지 않는다.’
‘속지 않는다.’
염불처럼 외웁니다.
언제나 결론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후로는 찾아와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3.
나는 가로등 바라보는 것을 즐깁니다.
어둠에 둘러 쌓인 채 유유히 빛을 내고 있는 가로등. 세찬 비바람이 칠 때나 눈보라 칠 때도 언제나 묵묵히 서 있는 가로등을 바라볼 때마다 어릴 적 한국의 골목길 가로등을 생각합니다.
좁은 골목길 가로등. 그곳을 나는 지나다녔습니다. 꿈을 안고 새벽신문 돌리는 소년소녀를 비춰 주었던 가로등. 그 밑을 지나며 야밤 간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들려오던 ‘찹쌀떡, 메밀묵’ 외치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비비며 아빠를 기다리는 자녀들을 둔 퇴근길 발걸음을 비추었던 가로등. 밤늦은 시간 술에 취해 온갖 고뇌를 짊어진 어느 가장의 비틀거리는 몸짓을 비춰주고, 시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는 아저씨 아주머니를 비춰주고, 집나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를 비추었던 가로등. 새벽기도 가는 발길을 더욱 가볍게 비춰 주었던 가로등.
이야기 책 속의 성냥팔이 소녀와 빨간 머리 앤과 거지와 왕자를 비추었던 가로등. 링컨과 마더 테레사를 비추었던 가로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가로등 빛을 받으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나도 이름 모를 한 골목길의 가로등이고 싶습니다.
말없이 고요히 많은 사람들의 희, 로, 애, 락을 같이하며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그런 가로등이고 싶습니다. 멀리 가지는 못해도 내가 자리한 곳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으면서 할 일 다 하는 야무진 가로등이고 싶습니다.
야단법석은 떨지 못해도 잔잔한 미소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비춰 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하셨지.’
나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에게 빛을 주신 그 분은 영원한 가로등이 아니셨던가!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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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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