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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5센티미터
코리안위클리  2005/01/21, 03:46:07   
1.
그 분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삼 백 육 십 오일을
아무 조건 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름답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얼마 전 내게 배달되어 온 어느 잡지의 첫 장에 쓰여진 시(詩)입니다. 이 시는 짧았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길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 중에서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 시간의 선물입니다. 새해를 맞이한다고 들뜨고 소란스러운 나날이었지만 지금 당장 생명의 시간을 거두어 가신다면 누군들 새해를 온전히 맞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너나 없이 무심하게 한 해를 보내고 또 그렇게 한 해를 맞았습니다. 세파에 시달려 살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저 달력의 사진과 그림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속절없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고 느끼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사람이라면 과연 그렇게 무덤덤 하게 새해를 맞을 수 있겠습니까?
가슴 시리게 벅찬 감회와 떨리는 손길로 새해 새 달력의 첫 장을 펼쳐보지 않겠습니까?
한 시간 한 나절이라도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아껴 먹듯 그렇게 살려하지 않겠습니까?
보다 가치 있고 보다 뜻 있는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골똘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 앞에 삼 백 육십 오일의 선물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선물의 색깔은 하얗습니다. 하얀 선물. 마치 함박눈이 내린 대지의 모습 같은 그런 순백의 색깔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순백의 색깔 위로 저마다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야 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선물임을 깨닫고 나면 비단 시한부 삶을 사는 이가 아니라 해도 그 발자국을 함부로 찍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그렇게 가슴이 설렐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어린 소년처럼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제각기 삶의 자화상을 그려야 하는 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새 날이 밝았습니다. 이 새해를 주신 이가 누군 지를 아는 자들에게 마다 주신이의 목적에 맞게 삼 백 예순 다섯 날을 살아야 하는 의무도 함께 주어지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나는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설레던 그 옛날의 소년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주님,
주신 이 하얀 공간 위에 제발 함부로 발자국을 찍지 말게 하소서.
지금껏 걸어왔던 것 같은 어지럽고 지저분한 발자국일랑 남기지 않게 하소서.
선물로 받은 이 새해만은 제발 새로운 발자국을 찍게 하소서.

2.
사람 사는 게 누이야
공원 위를 맴도는
저 새의 흔적 같구나
있는 것 같으나
먼 데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보면 없는
새의 맴도는 흔적 같구나
함께 있지 않으면 살지 않는 것
진정 함께 하지 않으면
바람보다 허무한 것
저 보채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떠 가는
비행기의 엔진소리
이 모두가 어울려
한데 어울려
우리의 삶을
빚어내나니

함께 있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
진정 우리 더불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마시고 움직이고 고민한다는
이것이 모두 무슨 허무냐
호젓한 공원에 홀로 앉아
곁에 숨쉬고 있는
천리 밖의 너를 껴안는다
<공원에 홀로 앉아>

오늘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여 아침 일찍 공원 산책을 했습니다. 공원을 거닐면서 계속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붕 떠 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 참 괴로웠습니다.
때로 이렇게 나의 발이 지면에서 5센티미터쯤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우주인이 된 것 같습니다. 지구라고 하는 이 낯설기만 한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주인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이미 충분히 위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선 완전한 지구인일 수 있었으므로 나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의 화육(化肉)은 나의 어쩔 수 없는 5센티미터 공간을 처음부터 부끄럽게 만듭니다.

나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신자들에게 뭔가 줄 수 있고 또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만한 오해였다. 나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아무 것도 줄 수 있는 입장이 못되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서울 살림을 등지고 동시에 품고 있던 엘리트 의식도 땅에 파묻고, 가난한 시골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여 일하고 있는 친구의 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부럽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동감하면서도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다시 한번 부끄러웠습니다.
왜 나는 진정으로 함께 살지 못하는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5센티미터의 공간을 어찌할 것인가? 왜 나는 그 친구처럼 실천하는 신앙인 되지 못하는가? 무슨 배짱으로 오늘도 끼니 걱정을 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이 런던 땅에서 성경도 모자라 장자(莊子), 노자(老子)와도 벗하면서 이토록 절절하고 가슴아픈 사랑으로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가?
분명히 나는 지금 외도(外道)를 걷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이 아닙니다. 뭔가 가짜가 섞여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이웃을 위하여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구역질나는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호화스럽게만 보이는 집에 살면서(속으로는 끊임없이 더 크고 좋은 집을 그리면서), 남들보고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는 눈꼽 만큼도 가난하지 않는 나는 분명히 내가 아닙니다. “가짜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말콤 엑스를 눈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성자 타이틀은 마땅히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독후감의 전부입니다. 왜? 그는 시궁창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꽃 피는 언덕도 물방아 도는 계곡도 그리고 그 무엇도 아니고 바로 시궁창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시궁창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온 한 마리 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등천하기 전에 거꾸러졌습니다.
나는 꿈을 꿉니다. 우선 책을 모두 없앱니다. 그리고 가족을 나에게서 해방시킵니다. 작은 손가방 하나 든 인생이 됩니다. 닥치는 대로 일합니다.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그리고 만납니다. 아무와도 만납니다. 또 헤어집니다. 악수 한 번 하고 간단히 헤어집니다. 이렇게 3년간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비명에 횡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꿈입니다.
아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5센티미터여,
성직자로 있는 한 나는 위선자입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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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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