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국내외 경제 악재로 대기업들이 내년 기업운영의 기본 틀을 짜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율·유가에다 최악의 원자재난까지 겹치면서 재계가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경제현실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10대 그룹사 중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한 곳은 단 1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그룹의 관련업무 담당자들은 “환율 등 주요 경영계획의 기준이 되는 각종 지표가 너무 불확실하다”며 “도대체 이런 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최근 주요 계열사의 투자·매출 및 예산계획이 담긴 사업계획을 받아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은 당초 지난달 초 사업계획을 제출받았으나 환율과 원자재 수급난이 가중되자 계열사에 경영계획을 다시 짜도록 돌려보냈다.
삼성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의 핵심은 불확실성에 대비한 ‘견실경영’이 될 것”이라며 “‘불황일수록 투자는 늘려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침대로 핵심사업 위주로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LG그룹도 화학·전자·통신을 축으로 업종 전문화를 꾀한다는 큰 틀만 정해졌을 뿐 세부 사업계획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유가불안에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까지 겹친 SK는 매년 11월 말쯤이면 내년 사업계획을 정했지만 올해는 기본 골격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지난 9월 이후 국제유가와 환율이 널뛰기 행진을 하고 있어 연말이 다 돼서야 기본적인 경영계획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유관홍 사장은 최근 각 사업본부가 제출한 내년 사업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현재 경제여건에 맞는 ‘생존방안’을 짜라”고 지시했다. 환율불안에다 사상 최악의 철강재 공급난이 우려되는 상황에 맞게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환율쇼크’에 직격탄을 맞은 현대·기아차는 사업계획의 근간이 되는 적정 환율조차 아직 정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단계별 대응 시나리오를 수립한다는 원칙만 세운 채 구체적인 계획은 이달 말로 미뤄놨다.
포스코 역시 원료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이달 중순 이후에나 사업계획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