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미국과 유럽 간 가교를 놓겠다고 나섰다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
블레어 측의 미국 협상 창구이면서 유럽에 우호적이었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사임이 돌발 악재로 불거진 데다 프랑스 등 유럽 쪽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유엔 간 갈등을 중재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라크 전쟁 등 국제 현안을 풀어나간다는 블레어 총리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은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에도 블레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푸들이란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어진 셈이다.
영국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는 16일 파월 장관의 사임으로 블레어가 제시한 미국과 유럽 간 가교 노선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미 고위 당국자 중 파월 장관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신뢰하는 반면 후임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블레어측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수정하라는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주로 온건파인 파월 장관 측을 창구로 협상에 주력해온 만큼 그의 사임은 블레어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블레어 총리는 그 동안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을 해소하는 가교외교 정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15일 저녁 런던 시장관저인 맨션하우스에서 행한 만찬 연설에서 “미국과 유럽에 대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빚어진 갈등을 뒤로하고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블레어의 가교외교 정책에 대해 “블레어 총리가 부시를 지지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직한 중개인인지 의심스럽다”고 일침을 가했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