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가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나면 국내 은행권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다국적 금융회사들과 토종은행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은행을 소유한 외국자본이 모두 투자펀드였던 반면 HSBC와 씨티은행은 전세계 영업네트워크와 금융노하우로 무장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란 점에서 국내은행들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매각과정과 조건
HSBC와 뉴브릿지캐피탈은 지난해 말께부터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1년간 진행됐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데이비드 엘든 HSBC 회장도 지난해 11월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은 HSBC의 사업에 적합한 은행”이라며 “어떤 은행이든 인수가격이 적절하다면 정밀실사 등을 통해 인수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매각협상이 급진전된 것은 한국씨티은행 출범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비이락’인지 이 때를 전후해 매각 관련자들이 홍콩을 자주 드나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예금보험공사 등에는 HSBC와 주간사로 보이는 기관으로부터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제일은행에 지금 공개된 것 이외의 추가부실이 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게 질문의 요지. 노동계에서도 “제일은행이 조만간 HSBC로 넘어갈 것”이라고 제일은행측 관계자가 직접 언급했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은행판도 ‘빅4’에서 ‘빅6’로
HSBC도 제일은행 인수성공시 총자산을 9조2천억원에서 56조원으로 키우고 전국 요지에 있는 제일은행 지점 4백4개를 영업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씨티은행과 HSBC의 출현으로 국민·우리·하나·신한 등 지금의 빅4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외국계 은행들의 최대 강점은 풍부한 선진금융기법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다.
은행, 보험, 증권 등 전 금융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금융그룹의 파워와 1백년이 넘는 역사에서 쌓은 노하우를 국내 은행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면에서도 국내은행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씨티은행은 전 세계에 4천여개, HSBC그룹은 1만여개 점포를 갖고 있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많아야 수십개 수준이다. 무역금융과 외화송금, 환전 등에서 외국계 은행들은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셈이다. 씨티은행 하나만으로도 초긴장 상태에 빠졌던 국내은행들은 씨티은행에 못지않은 또 다른 강적을 함께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국경제
HSBC는?
자산 117조… 세계 2위 은행
전세계 76개국 1만여개 지점
HSBC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 76개국에 1만여개 지점과 23만8천여명의 직원을 갖춘 세계 2위 은행이다.
중국과 유럽간 무역거래가 급증하던 1865년 ‘The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 Limited’로 출범했으며 1백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91년 지주회사인 HSBC Holdings PLC를 설립, 그룹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그룹의 총자산은 1천1백72조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1.7%였다. 개인·기업금융, 투자은행, 투자자문, 자산관리, 신탁, 프라이빗뱅킹 등 거의 모든 금융영역을 영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2년 부산지점을 개설한 이래 84년 서울지점을 열었고 이어 서초·방배·압구정·광장·분당·삼성지점을 오픈, 현재 8개 영업점을 갖추고 있다. 국내 진출 초기엔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여·수신, 수출입무역금융, 외환 및 자금거래, 증권거래, 자금관리 등의 서비스를 했으며 98년부터 직장인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개인금융업무를 공격적으로 펴왔다.
지난 6월 말 현재 자본총계는 3천8백8억원이며 총자산은 약 9조2천억원이다. BIS비율은 16.92%로 국내은행들보다 크게 높고 고정이하여신비율도 0.11%에 불과해 안전성이 돋보인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