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내에게는 정치적 명분도, 종교의 차이도 의미가 없었다. 다만 아들과 남편의 목숨이 전부였다.
80대 노모(사진)의 애타는 모정과 이방인 아내의 호소가 영국 전역을 눈물로 적셨다. 이라크 테러 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납치돼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영국인 인질 케네스 비글리(62)의 얘기다.
비글리의 노모 엘리자베스 비글리(86)는 23일 리버풀 자택에서 영국 TV에 출연해 아들의 석방을 눈물로 호소했다. 노모는 “켄(케네스의 애칭)에게 자비를 베풀어 살려 보내달라”고 테러범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내 아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가족이 그를 필요로 하고 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며 노모는 울먹였다. 방송을 마친 뒤에는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태국에 머물고 있는 비글리씨의 태국인 부인 솜바트도 영국 TV에 나와 ‘유일신과 성전’에 보내는 공개호소문을 발표했다.
솜바트씨는 태국어로 “나는 켄 비글리의 아내이며 그를 매우 사랑한다”며 “부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말은 즉시 영어로 통역됐다.
솜바트씨는 7년 전 결혼한 비글리씨의 두 번째 부인. 전날 테러단체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비글리씨는 “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내를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었다. 영어가 서툰 아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노모의 회견에는 형 스탠(67)과 막내동생 필립(49)도 함께했다.
비글리씨의 고향인 리버풀에서는 24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드문 일이다. 영국 성공회 제임스 존스 주교와 아크바르 알리 리버풀 지역 이슬람회 의장은 비글리씨의 석방을 촉구했다.
비글리씨의 노모가 살고 있는 리버풀 월튼 마을의 교회에서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철야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원칙은 단호하다.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