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하는 말을 미리 요약해서 말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을 하든지 그 행동은 동기가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서 세상 하직하는 것을 지켜보면 속상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물론 임종하는 순간까지 올곧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거개가 늙어가면 갈수록 이기적이 되어가고 쩨쩨해지고 옹졸해지고 추접스러워지는 경향을 띄게 됩니다. 사람 사는 게 다 이 모양인가 하고 한심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우리 모두가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행동하기 보다는 빼앗긴 것을 찾으려고 악을 쓰면서 한평생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근래 나를 압도하는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랑하면서 또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이냐? 도무지 시원한 깨달음이 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단 한 가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 행동을 촉발하는 동기는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진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행동을 합니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싸고 일하고 자고 등등 본능적인 행동을 수없이 하며 삽니다. 이런 행동들을 할 때마다 일일이 ‘이거 살려고 이러는 거지’ 하고 의식한다면 삶이란 도대체 얼마나 피곤하고 한심한 것이겠습니까. 그러기에 수없이 많은 행동을 별 의식 없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사람이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반드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됩니다. 관계속에서의 행동이 동기를 분명히 하지 않고 타성에 의하여 의식없이 으레 만나게 되어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동물이나 다름없는 생존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타성화된 우리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밥 먹고, 싸고, 일하고, 자고 등등-도 좀 의식적으로 내가 지금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먹는 것일까, 싸는 것일까 하고 가끔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가 사과 하나를 먹을 때에
너희 마음 속에 이렇게 말을 하라.
네 씨가 내 몸 속에 살아라.
네 내일의 꽃눈이
내 가슴 속에 피어라.
네 향기가 내 숨이 되어라.
그리하여 우리는 한 가지
끊임없이 철철이 즐거워하자.
(칼릴 지브란 ‘예언자’중에서)
사실 매 끼니마다 매 행동마다 그 행동에 대하여 의식한다면 오히려 우리의 삶이 역겹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것은, 모든 행동을 타성과 무의식에 맡기는 삶과 자기의 행동의 동기를 진지하게 살피는 삶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루는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서 스스로 되묻곤 했습니다. 내가 지금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것이 누구를 사랑하고자 함이냐?
꽤 넓은 공원을 한 바퀴 돌도록 아무런 대답도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나 혼자 아름다운 공원을 감상하고 하는 것이 도대체 다른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런데 집에 돌아와 그 날밤 자면서 꿈을 꾸는데 내내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숱한 사건들과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꿈에서 깼을 때 남은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즉, 내가 공원에 갔을 때 느끼고 겪은 것들이 내 생명 안에 스며 들어와 내 인생이 좋게 변화된다면, 그런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난다면, 비록 나 혼자 공원에 갔을 지라도 나의 공원산책은 남을 사랑하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참 좋았습니다. 사랑이 뭐 그 따위냐고 따지고 들면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 공원에 갔다고 할지라도 함께 하고 싶은, 또는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 공원에서 소리쳐 부른다면 그 사람은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내 옆에 있게 된다고 나는 믿습니다.
인간 의식의 혁명은 자기 삶의 행위의 동기를 누구를 사랑하기 위함에서 찾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제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의 의식을 혁명하여 새로 나자면 우리는 사랑을 동기로 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왜 공부하느냐, 왜 직장에 다니느냐, 왜 취미활동을 하느냐? 뿐만 아니라 왜 때를 따라 밥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느냐 등등 지금까지 관행으로 하고 살아온 우리의 모든 행위가 이제부터는 우리가 만나는 또는 만나야만 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기로 할 때만이 우리의 삶은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게 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인생살이를 곰곰이 살펴보면-특히 소위 의식이 있다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그러한데-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행동하기 보다는 빼앗긴 것을 찾으려고 악을 쓰면서 한평생을 다 보내고들 있습니다. 물론 악마적인 세력에게 빼앗긴 우리의 것을 되찾는 일은 매우 옳고 시급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의식을 갖고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찾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우리의 행동의 동기는 우리가 당장 대면하고 있는 또는 만나야 하는 이웃에 대한 간절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부르짖고 찾는 그것들을 인간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고 또한 마침내 잃은 것, 빼앗긴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불멸의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내 마음의 간절한 생각,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은 실로 유감스럽고 한스럽습니다. 다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픈 말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을 하든지 그 행동은 동기가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김은혁 -
=========================================================================================
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