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아온 영국의 대학이 중병에 걸려 있다고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대학 재정이 취약해진 데다 교육의 질마저 떨어졌다는 게 이 잡지의 진단이다.
1960년대 영국의 대학 진학률은 20명 가운데 1명 꼴이었으나 오늘날에는 3명 가운데 한명 꼴이다. 이렇게 학생 수는 크게 늘어났지만 이들을 위해 쓰이는 교육지출은 되레 줄었다.
학생 1인당 교육지출은 특히 90년대 들어 급감했다. 89년 이래 학생 1인당 장학기금 조달액도 37% 가량 떨어졌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의 학생 1인당 수입은 영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옥스퍼드대학의 각각 4.5배, 3.2배나 된다. 재정 악화에 따라 교수 1인당 학생비율도 10년 전 9명에서 이제는 18명에 이르게 됐다. 연구진들의 봉급 또한 공공부문의 다른 직종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이 때문에 몇몇 대학은 재정해소를 위해 한국·중국·동부유럽의 학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학건물과 연구시설마저 낡은 상태 그대로다.
위기는 재정에만 있지 않다. 대학의 질마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영국은 화학·물리·생리·의학 등 각 부문에서 11개의 노벨상을 따냈으며 70년대도 13개나 거머쥐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는 4개로 줄더니 90년대는 고작 2개를 수상하는 데 그쳤고 지난 5년간 단 한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대학에서 배출하지 못했다.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세계 1천2백명의 과학자 가운데 영국인은 8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견줘 미국은 7백명이나 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한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잡지는 지적했다. 정부의 경직된 정책으로 인해 대학의 연구 방향이 획일적으로 흐르는 등 정부가 오히려 대학교육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잡지는 꼬집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난마처럼 뒤엉켜 있는 대학의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고등교육 10년 전략’을 짜기 위한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달 그 결과가 나오기로 돼 있었지만 최근 에스텔 모리스 교육장관이 사임하면서 다시 발표가 연기됐다. 잡지는 근시안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결국 대학의 위기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위기를 학교통합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런던대학은 이공계 명문대학인 임페리얼대학 등과 통합을 모색 중이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