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모기업인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이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2세.
영국내 분향소는 한진해운 빌딩(대한항공 런던지점 건물, 66/68 Piccadilly, London W1V 0HJ) 3층에 마련됐다.
“하늘길·바닷길·뭍길 초석놓은 수송계의 거목”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17일 오후 1시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1920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25세 때인 45년 인천시 해안동에 수송업체인 한진상사의 간판을 내건 뒤 수송 사업의 외길을 걸어왔다.
정·관·재계의 지인들은 해방 직후 트럭 한 대로 세운 기업을 재계 5위의 대기업 그룹으로 일군 조회장의 별세를 매우 애석해 했다.
짧지 않은 우리 기업사를 통틀어 조회장만큼 유난히 길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 온 기업인도 없을 것이다.
“수송 사업은 사람 몸의 혈맥과도 같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한국 수송 사업의 발전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우리나라 수송사의
거인이 사라졌다.”
50~60년대 미군 군수물자 등을 수송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 대한항공·한진해운·한진중공업 등 21개 계열사로 구성된 자산 24조원 규모의 재계 5위(공기업 제외)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6·25 한국전쟁의 발발로 회사가 쓰러질 위기에 놓였을 때, 주한 미8군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맺으면서 회사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월남전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회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66년 3월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달러의 계약을 성사시킨 이후 71년 전쟁 종료 때까지 5년간 한진그룹이 획득한 외화는 모두 1억2천만달러에 달했다.
조회장은 특히 69년 국영항공회사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소형 항공기 10여대로 출발한 대한항공을 30여년 만에 보유항공기 121대를 갖춘 세계 10대 항공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회고록 ‘내가 걸어온 길’에서 “당시 중역들이 완강히 반대했지만, ‘우리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 한 번 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강권에 못이겨 억지로 인수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항공 인수 직후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며 사업에 몰두하여,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로 키웠다. 대한항공의 비약적인 성장 배경에는 79년 오일쇼크로 왕복 항공유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첫 뉴욕 취항 비행기를 출발시키고, 출발 4시간 뒤 공급처를 확보한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 조회장의 두둑한 배짱이 큰 몫을 했다.
그는 또 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하고 87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선사인 대한선주까지 인수하여 한진해운을 세계 5대 선사 대열에 올려놓았다.
고인이 프랑스·독일·벨기에 등 외국에서 받은 민간인 최고 영예의 국가 훈장만도 아홉개나 된다.
그의 성격은 직설적이었다. 그는 자녀들에게 엄하기로 유명했다. 92년 대선 때는 당시 김영삼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호·불호가 명확한 이런 성격 때문에 국민의 정부 들어 한진이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17일 타계함에 따라 한진그룹의 소그룹 분리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회장은 1993년부터 그룹을 아들 4형제에게 나누는 작업을 해왔다.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게는 항공 관련사를, 차남인 조남호 부회장에게는 한진중공업 등을 책임지고 경영토록 했다.

한진그룹 후계구도 : 4형제가 한 분야씩... 소그룹 분리 가속화
창3남인 조수호 부회장에게는 해운 관련사들을 맡겼다. 4남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2000년 4월 메리츠증권을 계열 분리해 경영하고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한달에 한두번씩 아버지와 함께 형제들이 모여 경영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우애가 돈독하기 때문에 어떤 그룹처럼 기업을 놓고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내부에서는 창업주의 별세로 그동안의 형제간 분할 경영체제에서 4개 소그룹으로 그룹이 분리될 것이며, 그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족은 부인 김정일(79) 여사와 장녀 현숙(56)씨 등 4남1녀.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고인이 항공, 육상, 해운 등 교통물류산업의 기반구축으로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추서하게 됐다고 건교부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