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그가 아는 산이라고는 무릎께에 닿는 세 화산밖에 없었다. 꺼진 화산을 그는 걸상 대신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는 한눈에 지구 전체와 사람들을 다 볼 수 있겠지…)
그러나 겨우 그가 본 것은 몹시 날카로운 바위산 봉우리뿐이었다.
“안녕” 그는 무턱대고 말해 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누구냐?”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
“누구냐… 누구냐… 누구냐…” 하고 메아리가 대답했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하고 메아리가 또 대답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상도 한 별이지. 아주 메마르고 몹시 뾰족하고 소금이 버적버적하고 거기다가 사람들은 상상력도 없이 남이 하는 말을 뇌기나 하구… 내 집에는 꽃이 하나 있지만 그 꽃은 언제나 말을 먼저 걸었는데…)
<쌩떽쥐뻬리/‘어린 왕자’에서>
오늘 저녁 나는 내내 혼자서 끙끙 앓았습니다.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심기일전하여 신명나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참 외롭구나”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무슨 일도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고 좋은 기분이 되지 않아서 혼자 끙끙 앓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서울에서 친구 한 녀석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외롭구나!”는 말을 푸념처럼 하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인구 많은 도시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도 외롭고, 저 깊은 산 속 외딴 오두막집에 살아도 외롭고,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모든 사람들이 돌이켜보니 하나같이 외롭게들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스쳐 지나는 풍경, 풍경들도 깊이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남몰래 혼자 끙끙 앓았던 것은 이 모든 외로움이 외로운 내 속에 들어와서 더 큰 외로움으로, 마치 만지기만 하면 더더욱 커지는 달걀 귀신처럼 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탓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깨달음은, 사람이 외로워하지 않고 무슨 힘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무치게, 사무치게, 뼈에 사무치게 외로워야만 진정으로 그리워할 수 있고, 꿈속에서마저도 진정으로 그리워 할 수 있어야 마침내 님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외로워하는 사람은 빼앗긴 사람이고, 그리워하는 사람이고,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입니다. 내가 가을을 보내면서 심하게 속병을 앓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외로운 사람이면서도 외롭지 않은 양 그리워하지도 않고, 결코 뼈에 사무칠 만큼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착하디 착한 외로운 사람들을, 착하디 착한 외로운 자연을 만나면서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다행한 병입니까?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
“지금 내 맘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함께 있어 다오”하고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에게라도 당부해야만 했던 예수님의 외로움은 천하를 다 삼키고도 여전히 허전하고 여전히 근심과 비난으로 남을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예수님의 외로움 때문에 마침내 외로운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속 깊은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을 풀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너의 외로움을 풀기 위해 품는 착한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천하와 내게 속한 것을 모두 떠나 보내고 적막강산 빈들에 나홀로 남아야 합니다. 홀로 남았던 경험도 없이 홀로 있는 외로운 사람들을 감히 만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나하고 친하자.”
2.
마지막 가을 햇살에
또 한 잎 낙엽이 진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아니 좀 더 외롭고 가벼워지라고
소리치며 지고 있다
인간이 지상에서 외로운 건
당연하다고
그 고독의 힘이 아니면
사랑은 사랑으로 남을 수 없다고
속삭이며 지고 있다
‘괴로움을 나무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 있지만,
이 계절에 나는
‘외로움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
말하고 싶다
외로움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로운 아픔,
모든 창조는 외로움을 태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저만치, 시간을 읽을 줄 모르는
철부지들이
나무아래 수북히 쌓였다가
찬바람에 우르르 쏠려간다
그것이 슬퍼서
지금 나는
창 밖 가득히 우수의 눈빛으로
떨고 있다.
<낙엽의 노래>
내 서재에서 잘 보이기 때문일까요? 나에게는 자작나무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가로수입니다. 창을 가득 메운 자작나무 이파리들, 그 잎을 하나 둘 떨어내며 서 있는 모양이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절을 한껏 느끼게 해주니 기특하게 여겨집니다. 그 자잘한 이파리가 멋없이 떨어지다 지나가던 어깨를 건들이기라도 하면 문득 하늘도 보게 되고 계절도 보게 됩니다. 쌓여있는 자작나무 낙엽위를 걸으면 바스락 부스져 내리는 것이 어쩌면 소박하게 살다 사라지는 평범한 착한 사람들 같이 느껴집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땅을 덮는 낙엽처럼 오히려 어렵고 힘들 때의 삶의 기반, 디디고 선 그 자리를 감싸는 사람들, 세상의 듣기 싫은 이야기들, 구질구질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 멋부릴 줄 모르지만 흘러가는 세월속에 다른 이들을 슬쩍 어루만지며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대단한 힘은 없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참 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그들 중에 당신도 한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서로의 정만 확인하다 어설픈 마음으로 이야기를 끝낸 적은 없습니까? 이게 다는 아닌데, 사실 나도 뭐라고 해야 진정한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싶어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선 적은 없습니까? 속이 시원하고 쫘악 가라앉는 마음이 무엇인지는 아는데 그 상태가 되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럴 때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들판에 혹은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높이 달려 있다 떨어져도 낙엽은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하소연을 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때,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을 때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 속에 진짜 인생의 해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던 그리움이 채워집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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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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