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이후 40년 만에 간호사들이 다시 해외로 쏟아져 나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일하기 힘든 중년층 취업난, 악화되는 자녀 교육 환경을 반영한 현상이다. 60년대 ‘파독 간호사’들은 국가 차원의 외화벌이를 위해 나갔었다.
두 딸을 둔 주부 최모(36)씨. 서울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서 지난 4월부터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최씨는 1995년까지 간호사로 일했지만 첫딸을 낳고 ‘자의반 타의반’ 병원을 그만뒀다. 최씨는 “돈을 더 벌고 싶고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미국 간호사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주관하는 미국간호사협의회(NCSBN)에 따르면, 작년에 시험에 응시한 한국 간호사는 1058명. 국가별로는 필리핀, 캐나다, 인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합격률은 70~75% 수준.
올해는 3월까지만 411명이 응시해 최소 1500명을 쉽게 돌파할 전망이다. ‘SLS 미국간호사면허연구소’ 안수현 원장은 “2001년 400여명, 2002년 700여명이 지원해 응시 간호사가 매년 5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해외 진출이 재개된 것은 IMF 직후. 극심한 취업난으로 미국·사우디아라비아·노르웨이 등 간호사가 모자라는 나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해외 간호사 중 90% 이상이 미국을 선택하고 있다. ‘파독 간호사’에서 ‘도미(渡美) 간호사’로 바뀐 것이다.
미국에서는 경력 2~3년 간호사의 경우 한 해 6000만~7000만원을 받는다. 우리 준종합병원에서 받는 임금의 2~3배에 달하는 액수다. 취업 이민 형식으로 영주권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간호사는 매우 힘든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어 앞으로 10년간 12만명 이상의 간호사 인력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준비 중인 간호사 허은영(여·28)씨는 “우리는 30대 중반을 넘고 아이가 생기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은 건강만 허락하면 60~70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40~50대 간호사는 물론, 심지어 남자 간호사까지 미국 시험 응시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선 현재 간호장교 출신으로 월남전까지 참전했던 ‘최고령’ 응시생 최인숙(여·55)씨, 간호사 경력 27년의 남자 간호사 현동수(52)씨 등 50대 간호사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현동수씨는 “합격하면 미국에서 70대까지 마취간호사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면허시험에 합격한다고 모든 간호사가 미국 간호사로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 서수연(여·26)씨는 “면허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영어 실력이 없으면 현지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영어 공부에도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의료원 간호대학 송지호 학장은 “요즘 간호사들은 탄탄한 영어실력과 국제화 마인드를 갖추고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