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북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 사고는 북한의 낡은 철도 시설과 부주의가 낳은 참사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고는 22일 오후 1시쯤 용천역 쪽에서 질산암모늄과 연료용 기름을 실은 열차의 화차를 바꾸던 중 전기 스파크가 생기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부주의로 이들 화차가 전기선에 접촉해 스파크가 생겼다고 밝혔다.
폭발 지점은 용천역에서 남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이다.
정보 당국은 일부 보도와 달리 마주 달리던 열차 간 충돌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위원장을 태운 열차가 지나가도록 용천역에 있는 모든 화차 및 열차를 보조 철로에 세워뒀다가 화차를 바꾸는 과정에서 사고가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 당국이 판독한 항공사진에도 두대의 열차는 보조 철로 선상에서 100여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에 의한 스파크는 유류 적재 화물차를 폭발시켰고, 이어 질산암모늄 적재 화차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두 열차 간 충돌이 아닌 추돌 또는 접촉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사고가 커진 것은 유류와 질산암모늄이 뒤섞여 강력한 폭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질산비료의 원료가 되는 질산암모늄은 그 자체로는 200도의 온도에도 안전하지만 디젤유와 같은 기름과 섞이면 강력한 폭약으로 둔갑한다.
그래서 용천 역사는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용천읍 내의 가옥과 공공건물을 날려보내고 태워버렸다.
“병원마다 어린 환자 울음바다”
열악한 설비로 사망자 늘어… 현지선 2천명 넘을 가능성 제기
용천 참사 6일째인 27일 중국 단둥에서는 용천과 신의주에 다녀온 화교들이 현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화교들에 따르면 신의주의 도립병원과 시립병원, 방직병원, 산원 등 네곳에 환자들이 분산 입원해 있으나 열악한 설비로 인해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숨지는 희생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용천에 다녀온 한 화교는 “한약방에도 부상자들이 수용돼 있었다”며 “대부분 얼굴 피부가 거의 벗겨진 상태였으며 어린이들은 눈을 붕대로 가린 채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용천 이재민들과 부상자들의 비참한 상황이 외부로 전해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으나 용천 주민들은 여전히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용천과 신의주를 둘러보고 북중 접경도시 단둥으로 돌아온 소식통들은 27일 “현지는 죽음 일보 직전의 상황”이라며 “부상자 중에 사망자가 늘고 있으며 열악한 의료시설로 인해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복구 구호작업이 더디다 보니 민심도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단둥에서는 화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 북한 당국이 160명이라고 밝힌 사망자 통계는 “웃기는 숫자”로 일축되는 분위기다. 한 소식통은 “현지에서는 사망자가 2000여명은 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국제기구들이 열악한 수도시설 등으로 인해 전염병 확산이 우려된다면서 의료품, 식료품, 담요의 추가 지원을 거듭 호소한 데서 확인됐다.
폭발사고 직후 질산암모늄에 노출된 수 천여 명의 주민들이 엄청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이길 소렌슨 평양 주재 세계보건기구(WHO) 대표는 “현재 시급한 과제는 유독성 가스에 노출된 수 천 명이 앞으로 어떤 부작용을 겪게 될지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산암모늄에 노출되면 단기적으로는 피부와 목 폐 등에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으로는 산소공급 능력이 떨어져 결국 호흡장애와 혼수상태를 유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육상을 통한 긴급지원을 거부한 데 대해 외신들은 북측이 지나치게 체제 안보를 우려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