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칼럼을 즐겨 읽고 있다는 감사의 내용과 함께 그래도 힘들고 어려워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난감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고 ‘이 어려운 시절을, 이 난감한 시절을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화두를 가지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만은 나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뭐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먼 이국 땅까지 와서 오죽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하소연을 할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과 함께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되풀이하거니와 말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걸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입니다. 나는 지금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오늘도 더듬거리며 비틀거리며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생존에 있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아아 답답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난감한 시절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던 중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서 우연히 읽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한 딸이 자기 아버지를 회상하는 글이었는데 그 내용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암에 걸린 나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10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몹시 당황하고 낙담하실 줄만 알았는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선고를 받고 난 아버지는 그 동안 여기저기 벌여 놓았던 사업을 과감하게 그러나 신중을 다해서 차근차근 꼼꼼히 정리하여 함께 일하던 마땅한 사람들에게 넘겨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일 저런 일에 쫓겨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집안 식구들이나 친구 친지들에게 대하여 은근하고 따뜻한 사랑을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무엇이고 당신이 지금까지 품고 아껴 왔던 것들을 서슴지 않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차피 곧 죽을 인생이니… 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자세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당신의 삶을 참회하면서 앞으로 남은 짧은 시간 동안에 당신의 일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희망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진지한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아버지의 새로운 삶의 모습에서 죽음의 공포나 불안 같은 것은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10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절망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먼, 한 순간을 살아도 영원을 사는 비법을 터득한 성인처럼 우러러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 나의 아버지가 얼마 전에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스러운 것임을 보고 새삼 놀라고 감격해마지 않았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나의 아버지는 권위 있는 암 전문의의 선고대로 10개월 시한부 인생만을 살고 가신 것이 아니라 그 열 배도 넘는 십 년을 더 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대적인 시간이어서 자기자신을 위하여 쓸 때는 늘 모자라기만 하지만 우리가 절실한 심정으로 세상을 진지하게 살려고 들면 그때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대적인 시간 안에 신의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오기 때문에 결코 모자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신기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에 최상의 것은 신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 이 생명이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시간이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삼키우는 시간이 그 언제인가는 몰라도 지금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살아 있는’ 당신에게는 반드시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쓸데없는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잃어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후회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여전히 욕심사납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당신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생명이 있는 동안에 당신에게는 신이 축복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이제 곧 일어나 이 놀라운 축복에 감사 감격하면서 신이 나에게 맡기신, 즉 나의 소명, 곧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착수하십시오. 그 일이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신이 내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제 구실에 신명을 다 바쳐 사는 삶입니다. 그 삶을 통해서 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한순간을 살더라도 영원을 살 듯이, 단 한 순간을 살더라도 인생의 정점에 서서 살 듯이 살아야 합니다. 제 구실을 다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여기, 지금’이 마치 이 세상의 끝인 양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렇게 살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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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이 비치는 듯
고운 사과꽃잎들이
하늘하늘 춤을 춘다
저 깨끗한 꽃잎마다
어느 뉘
모습이 서렸기에
저리도 해맑을까
저 예쁜 꽃잎마다
어느 뉘
생각이 깃들었기에
저리도 싱그러울까
투명한 햇살이
연분홍 꽃잎 속으로 스미는
한낮이면, 꽃잎마다
연연한 그리움이 머문다.
나의 시 ‘사과꽃 연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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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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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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