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 이후 불황이 계속되면서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노인인구의 급증과 줄어든 일자리, 가족해체가 맞물려 노인들이 단지 생활고를 이기기 위해 각종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으로 나타나 정부당국의 대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석모(75)씨는 지난 19일 서울 가락동 A슈퍼마켓에서 면도날 2개와 건전지를 훔치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IMF 당시 부도를 내 생활형편이 어려운 아들에게 용돈을 탈 수 없었던 석씨는 요구르트 값만을 계산한 뒤 가게를 빠져나오다 주인에게 붙잡혔다.
석씨는 “아들 사업이 망한 뒤로 용돈을 달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아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모(82)씨는 지난 1월 서울 잠실동 B할인점에서 760원짜리 소주 1병을 옷소매 속에 감춰 나오다 계산대에서 덜미가 잡혔다.
이씨의 소일거리는 공원에서 다른 노인들과 소주를 마시며 장기를 두는 것. 살림이 넉넉지 않은 아들 부부에게 눈치 보이기 싫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는 이씨는 다른 노인들과 나눠 마실 소주를 살 돈이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형 할인점 보안관계자들은 “노인들이 물건을 훔치는 사례가 종종 적발돼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 매일 1∼2명의 노인들이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다는 B할인점 보안책임자 박모(26)씨는 “노인들이 배가 고파 식료품을 훔치는 등 딱한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대신해 계산을 해준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양재동 C할인점 최모(38) 점장은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사람들 중 60% 정도는 노인들”이라며 “이전엔 소형 고가품들을 많이 도난당했지만 IMF 이후 식료품 등 저가 생필품이 많이 분실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과학연구소 이현희 연구원은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생계곤란, 상실감 등을 겪으며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질수록 노인범죄 발생률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만큼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