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을 하다 얼마전 부도를 내고 친척집에서 얹혀 지내는 김모씨(38·광주시 북구 중흥동)는 추위가 몰아치는 요즘 가족이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김씨 가족은 이른바 무적시민이다. 마을금고에서 빌린 5천만원의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친척집으로 몰래 옮겨오는 동안 김씨 가족 모두의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이다. 무적시민이 되면 선거권,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것은 물론 입영통보나 각종 세금 납부통지서, 취학통지서 등 주민등록 주소로 통보되는 각종 통지서를 받을 수 없다. 또 기초생활보호대상자 혜택이나 전세권 확정일자를 받지 못한다.
김씨는 “빚을 못갚은 책임은 마땅히 져야 하겠지만 이렇게 철저히 제도적으로 매장될 줄은 몰랐다”며 “이 땅에 발은 붙이고 있지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한숨지었다.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면서 김씨처럼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무적 시민이 급증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 주민등록 말소자가 4,055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64.2% 늘어났다. 전주시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집요한 빚받기가 대량 말소사태까지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 말소는 의외로 간단하다. 카드사 등 금융기관에서 채무자 거주지의 읍·면·동 사무소에 “이 사람이 그곳에 살고 있느냐”는 내용의 ‘거주자 사실 확인요청’ 민원을 제기하면, 동사무소에서는 조사 및 공고 등의 절차를 거쳐 주민등록을 말소하게 된다. 한 카드회사 관계자는 “채무자를 압박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비슷해 무단전출로 인한 주민등록 직권 말소가 갈수록 늘고 있다. 행정자치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4만6천8백37건에서 2002년 17만2천9백17건으로, 지난해는 7월말 현재 11만3천2백57건으로 늘어났다. 이중에는 사망·실종·이민 등 정상적 이유에 의해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신용불량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