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11일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정동영 의원(사진)을 새 당의장으로 선출했다.
정의원은 이날 잠실 올림픽공원내 펜싱경기장에서 2만여명의 당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의장 및 상임중앙위원 선출을 위한 전국 선거인단 대회에서 참석 대의원 8338명이 1인2표씩 행사한 투표에서 5307표를 얻었다.
이어 신기남 의원이 2817표를 얻어 2위, 이부영 의원이 2143표로 3위, 김정길 의원이 1742표를 얻어 4위를 차지했고 이미경 후보가 1695표를 얻어 5위를 해 자력으로 상임중앙위원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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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은 누구?
전국 최다득표 국회입성 ‘대망론’ 눈길
11일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뽑힌 정동영 의원은 195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 국사학과 재학시절 유신반대 시위 등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감옥살이를 했다.
대학을 마친 뒤 〈문화방송〉에 입사한 그는 17년간 정치부·사회부 기자,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등을 지냈다.
뉴스 앵커로 활동하면서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1996년 초 대학 친구였던 이해찬 의원의 권유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같은해 벌어진 16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소속으로 전북 전주 덕진에 출마한 그는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됐다. 이후 당내 주류인 동교동계의 두터운 신임 속에 순항을 계속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을 거치며 대변인을 세 차례에 걸쳐 40개월간 맡았고, 이때 쌓인 대중적 인지도는 정치적 도약의 발판이 됐다.
그가 차기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40대 기수론’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그후 “당 침체와 국정 난맥의 원인이 동교동계의 전횡에 있다”며 당정 쇄신운동의 전면에 섰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전면퇴진을 요구한 데 이어, 2001년 당에 불어닥친 정풍-쇄신운동을 주도하며 ‘반동교동계’의 대표 인물로 떠올랐다.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노대통령 당선 이후 천정배·신기남 의원 등과 함께 신당운동을 주도해,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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