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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 - 다시 세우는 설날
코리안위클리  2004/01/15, 02:09:37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런던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마다 늘어선 귀성(?)행렬을 보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그들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한 주만 있으면 우리의 전통 생활에서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설날입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려도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먼 이국 땅에서 고향 하늘을 향한 그리움만 키우는 우리의 처지가 더욱 서글프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비록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바닥인, 불경기 속에서 맞는 명절이기는 하지만, 헤어져 있던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일이라 생각됩니다.  

천안엘 가면 ‘망향의 동산’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숨진 동포들이 묻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망향의 동산에는 예약된 자리도 많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처럼 외국에서 한참 활동하고 있는 동포들, 그분들이 내가 죽거들랑 유해를 묻어 달라고 예약을 해 놓았다는 겁니다.
이런 걸 가리켜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말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고 하던가요? 죽어서도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자 고국입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둘 다 행색이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 사람의 얼굴에는 무언가 알지 못할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풀이 죽어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같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같이 길을 떠나게 된 사이였는데, 한 사람은 고향을 찾아가겠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은 그저 막연하게 일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감돌고 있고, 어떤 사람의 어깨가 처져 있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시골의 조그만 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어딜 가느냐, 무엇 하러 가느냐, 이야기는 저절로 고향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아직도 모르고 있었느냐고, 당신의 고향이라는 포구는 지금 어떤 섬과 다리를 놓는 공사 때문에 모두 까뭉개지고 모습이 변해 버렸다고 일깨워 줍니다. 그러자 고향을 찾아간다고 지금까지 힘있게 걸어온 사람의 어깨도 나머지 한 사람처럼 축 늘어져 버리고 말더라는 거예요. 고향은 고향이지만 옛 고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힘을 빼앗아 버린 겁니다.
이건 ‘황석영’씨의 <삼포 가는 길> 이라는 단편소설을 줄여 본 것입니다.
‘삼포’가 그 사람이 찾아가는 고향, 고향은 고향이지만 까뭉개지고 불도저 소리로 살벌해진 고향 아닌 고향의 이름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향은 마음속에 있을 때가 제일 소중하고 좋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은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습은 변하고, 인심은 바뀌고, 산천의구(山川依舊)란 옛 시인의 말이 정말로 허사임을 알고 탄식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우울한 고국의 소식이 그렇습니다. 몇 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렵다는 우울한 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날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설’이라는 말은 슬프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정월 초하루는 ‘살’(年)을 먹는 날이요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섧다’고 ‘서러운 날, 섧은 날’이라 부르던 것이 ‘설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설운 일이고 또 인간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름답던 청춘이 시들어 가는 것이 어느 시대 사람에게나 마음 아픈 쓰라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해순이라는 학자는 설날의 말밑을 달리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의 견해는 한자의 ‘설 립(立)’은 ‘세울 건(建)’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입니다. 그 으뜸꼴 ‘서다’라는 ‘서’에 ‘-ㄹ’을 더하여 ‘설’이 라는 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춘첩자(春帖子)의 ‘입’이나 ‘건’도 그런 데에 바탕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는 보았습니다.

19세기말에 들어와 조선의 조정에도 개화의 바람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삼국시대부터 써오던 음력을 태양력인 양력으로 바꾸었고 나라에서 쓰는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으로 고쳤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마치 개화요 근대화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는 민족적인 정서와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설날을 배척하고 신정을 지내도록 강조하였고 해방 후에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친일주의자나 서양화된 사람들이 이중과세의 폐단을 강조하며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푸대접을 했지만 우리 민족의 ‘설날’은 백여 년의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끄떡없이 버티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이 경제 위기도 우리 민족이라면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번 우리가 맞이하는 설날은 서러운 날도 또 한 살을 먹는 날도 아닌, 뜻을 세우고 삶을 목적을 세우고 가정과 사회의 미풍을 세우고 가족의 신앙과 서로간의 신뢰를 다시 굳게 세우는, 무엇보다 쓰러진 경제를 세우기를 다짐하는 설날(立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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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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