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맑은 어느 날
나는 홀로 가을 길을 거닌다
길은 하늘에 닿아 있고
가슴 시리도록 곱게 단장한 나무들
떨어져 구르는 낙엽들
그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한 줄기 햇살
그 햇살을 밟으며 내려오시는 분
그 분을 위하여
여기까지 달려 왔구나
또 다른 길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묵상하는 길 위로
순간이 이어지고
거기 입술을 부딪고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사랑하라는 그 분 음성
사랑하지 않고 아파하는 것보다
사랑하며 아픈 가슴이 더 따뜻한 것이라며
겨울로 가는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는
그 분의 넉넉한 숨결
기도가 끝난 뒤에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쓸쓸히 떨어지는 가을 잎새 위로
빛나는 그 분 숨결 받으며
가을 하늘로 천천히 날아 오른다.
(가을 길을 걸으며)
브레트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인기 배우로 일세를 풍미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이 영화는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에 탁월한 답 하나를 제시해주는 영화입니다.
미국 중북부 몬태나 주의 한 시골 마을 목사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는 아들들이 낚시대를 잡을 만한 나이에 이르자 독특한 방법으로 낚시를 가르칩니다. 그에 따르면 낚시는 우주를 창조한 신의 리듬, 신의 박자를 깨닫는 숭고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강가로 나가기 전에 집 뒷마당에서 박자측정기까지 준비해놓고 그것에 맞춰 10시와 2시 방향 사이로 낚시대를 율동적으로 휘두르는 법을 상당 기간 동안 두 아들에게 연습시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형제의 태도는 서로 달랐습니다.
형은 아버지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르며 그 사소한 것들에도 원칙에 충실히 따르려 애썼지만 동생은 일정한 단계서부터는 자유롭게 자기 스타일대로 낚시대를 휘두르려 했던 것입니다.
학교의 우등생이었던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큰 도시의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고 나중에는 대학원까지 졸업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됩니다. 그러나 학교 공부가 시원치 않았던 동생은 근근히 인근 소도시의 전문학교를 나온 뒤에 지방신문사에 보잘 것 없는 일자리를 얻습니다.
교수가 된 형이 7년 만에 금의환향해서 동생과 함께 강가로 송어 낚시를 갑니다. 그 때 형은 동생의 낚시가 이미 신의 박자를 꿰뚫은 어떤 경지에 올라있음을 확인하게됩니다.
스스로 ‘그림자 던지기’라 이름 붙인 그 낚시법은 독창적인 몸놀림과 고유한 리듬에 따라 날렵하게 낚시줄을 담그고 민첩하게 채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을 매혹시켰던 것은 이 그림자 던지기 낚시법으로 낚아올린 고기가 아니라 낚시 자체였습니다. 어망을 매는 데에서 미끼를 끼워 낚시대를 드리운 다음, 독특한 리듬으로 그것을 휘두르다가 송어가 입질하는 순간 날렵하게 채어 올리고는 그 파닥거리는 고기에 어떤 상처도 내지 않고 바늘에서 떼어낸 뒤 어망에 넣는데 까지 어느 한 대목에서도 군더더기의 허투한 몸놀림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동작은 낚시꾼과 낚시대와 강물이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아름다운 흐름 같았습니다.
그때 형은 말합니다.
“동생은 강물 위에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낚시대와 더불어 강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건 낚시가 아니라 차라리 예술이었다.”
장자의 <양생주>에는 왕이 한낱 소잡는 포정에게서 깨우쳐 얻는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정이 잔치에 쓸 커다란 황소를 잡는데 새끼 고양이 목따듯 소리없이 금새 해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크게 경탄하면서 비결을 묻자 포정이 답합니다.
“소 잡는 기술이 있고, 소 잡는 예술이 있습니다. 기술은 칼로 소의 살과 뼈를 가르지만, 예술은 길과 결에 따라 난 틈새로 칼날을 밀어 넣을 뿐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꿔야 하고 솜씨 좋은 소잡이가 일년마다 칼을 바꿔야 하나, 제 칼은 19년이 됐지만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정은 왕에게 자신이 도달한 경지는 소를 죽이는 것이(殺牛) 아니라 소를 푸는 것(解牛)이라고 말합니다.
소잡는 데에서 이 포정의 소풀기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동생이 그림자 던지기 낚시로써 이르고 있는 경지와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결과 켜를 가로지르거나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틈새로 스며 하나 되어 흐름으로써만 열리는 어떤 차원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의 생활도 넉넉하지 않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도 밝은 것 보다는 어두운 것 투성이 입니다. 국민들은 수해로 인해 망연자실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그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귀를 막고 지낼 수도 없고 애꿎은 하늘만 쳐다봅니다.
왜 우리의 삶이 이토록 음산하고 삭막해졌는가? 삶에서의 어떤 서투름 때문일 것입니다.
서투른 낚시꾼들이 강물과 거스르며 고기와 싸우려 하고, 초자배기 백정이 손에 쥔 칼의 날카로움만으로 소의 살과 뼈를 가르려 들 듯이, 삶의 초심자들은 돈과 힘과 술수만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듭니다.
기억해둡시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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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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