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입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12월을 보내면서 올해 역시 참으로 많은 빚을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제일 큰 빚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인 것 같습니다. 가장인 나의 직업(?) 때문에 벌써부터 희생을 강요당하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아내……,
나 하나만의 당신,
오늘은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홀로 당신 전부
교회로 향하고 있음을
종종 느낍니다.
사람들은 서운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압니다.
그것이 당신의 힘인 것을.
남자인 것을.
그것이 나에게는 매력인 것을.
당신이 나를 포옹할 때면
나는 느낍니다.
당신은 정말 나를 아껴주고 있군요.
그리곤 마음속으론 전율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압도하노라고.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정말 멋진 남자라는 이말은, 세월이 흘러도, 때로 나의 변덕이 생겨나도, 나의 오감이 흐려지는 그날이 와도 여전히 나의 가슴 밑바닥에 남아 나를 설레게 할 것입니다.
나 하나만의 당신,
오늘은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첫날 가본 당신 집은 빛과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쾅쾅거리며 올라오는
당신의 계단소리에
얼마나 마음 고동쳤는지.
우리의 첫 보금자리는
하늘이 주신 사랑의 보금자리.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빛과 향기에 이끌려
하늘이 주신 짝을 만나기를
매일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나 하나만의 당신,
사랑으로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펼쳐드리소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메일로 아내로부터 받은 시 같은 편지입니다. 그 글을 읽고 감동과 용기와 함께 큰 빚을 진 느낌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법 오랜 세월, 부부의 인연을 맺어오면서 주고받은 사연도 꽤 있을 법한데 내 쪽에서는 여행 도중 써보낸 말, 쪽지 몇 장 말고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중이 제 머리 깍지 못 한다는 말을 여기에다 써먹어도 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글장이’라는 별호에 비추어 너무나도 어색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런데다 이번에 받은 편지에 대한 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 찜찜해 하다가 오늘 이 지면을 빌어서 아내의 글에 대한 답글로 내마음을 그대로 잘 표현한 일본 시인 ‘다까무라 고오다로’의 시 <점점 예뻐지는 당신>을 보냅니다.
여자가 액세서리를 하나씩 버리면
왜 이렇게 예뻐지는 걸까.
나이로 씻겨진 당신의 몸은
가없는 하늘을 나는 금속.
겉 모양새도 남의 눈치도 안 보는
이 깨끗한 한 덩어리의 생명은
살아서 꿈틀대며 거침없이 상승한다.
여자가 여자다워진다는 것은
이러한 세월의 수업 때문일까.
고요히 서 있는 당신은
진정 신이 빚으신 것 같구나.
때때로 속으로 깜짝깜짝 놀랄 만큼
점점 예뻐지는 당신.
<다까무라 고오다로의 시
‘점점 예뻐지는 당신’ 전문>
아가씨의 손톱에 고리가 달려 찰랑거리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아랫입술에 고리를 단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원래 있던 것에 하나를 더 얹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과, 원래 있던 것 중에서 하나를 덜어냄으로써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당신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점점 예뻐지는 당신’ 이라는 시에서 ‘세월의 수업’이라는 말이 참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당신은 세월의 수업을 얼마 동안 받아온 사람인가? 이제 세월에게 더 배울 건 없고 세월을 가르칠 일만 남았는가? 아니면 아직도 세월에게 배워야 할 게 많이 남았는가?”
아무래도 내가 받은 ‘세월의 수업’은 그 모자람의 정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배워야 당신의 자리에까지 도달할지 아득합니다.
올 한해도 나는 이렇게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지금껏 사랑을 베풀어주고 고마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덕이 큽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많아서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서 성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고마움의 힘에 의하여 성장합니다. 내게 사랑을 주고 고마움을 베푼 사람들의 힘이 아니고서는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내게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들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해 본적은 드문 것 같습니다. 고마움에 타성이 붙어서 여태껏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게 사랑을 주고 고마움을 준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인데도 말입니다.
제일 먼저는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 지금껏 나를 가르치고 깨우친 수많은 선생님들,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 주고 위로가 되는 친구들과 선배들, 말없이 나를 가르치고 돌아보게 하는 후배와 제자들, 그리고 이들보다 먼저 나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아, 일일이 열거하자니 갑자기 가슴이 미어져서 더 이상 도저히 이들을 열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고마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마움을 진정으로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도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처럼 나도 남들에게 사랑을 주고 고마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다시 한번 한 해를 보내며,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해에는 더욱 넓어지기를, 우리의 영혼이 새해에는 더욱 맑아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하얀 눈송이 같은 평화가
이 땅 위에 덮이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 위에
더 이상 가슴 아픈 생명이 없기를,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쌓이는 눈처럼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이 세상에
참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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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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