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은 가짜 추천서를 이용해 버킹엄궁에 하인으로 취업한 뒤 궁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보도한 라이언 패리 기자와 그가 소속한 <데일리 미러>지에 대해 더 이상 사진 등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 20일 승소 판결을 받았다.
<미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영국에 도착한 직후인 지난 19일과 20일 패리가 두 달 동안 궁에서 하인으로 일하면서 찍은 수십장의 사진과 함께 버킹엄궁의 경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허술하다고 지적하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도했다.
패리 기자는 가짜 추천서를 이용해 왕궁에 일자리를 얻은 뒤 마음대로 궁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여왕의 처소에 음식과 음료수 등을 나르는 일까지 맡아 마음만 먹으면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시 대통령의 음식에 독을 넣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왕실측은 보도 금지명령과 별도로 패리기자가 고용 계약서에 근무중에 알게 된 비밀을 지킨다는 서약을 한 사실을 들어 그를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러>지의 피어스 모건 편집국장은 “공익을 위해 왕궁의 보안 취약성을 폭로한 것 뿐”이라면서 “우리 입을 틀어 막기에 혈안이 돼 있는 왕궁 변호사들은 현재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신원이 과연 이력서에 쓰인 대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더 타임스>는 20일 <미러>지에 공개된 왕실 사진들을 근거로 여왕이 먹을 콘플레이크가 싸구려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고 여왕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식탁 밑의 개에게 토스트를 먹이는 것은 왕궁 살림살이가 “하숙집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고 개탄했다.
이 신문은 또 왕궁의 화장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생긴 이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고 비꼬면서 왕궁의 전반적인 내부 장식은 “유행에 뒤졌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너무도 안목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러>지에는 “먹고, 자고 재혼하라”는 글귀가 수놓인 앤드루 왕자의 베개 사진도 공개됐다.
패리기자는 또 하인들에게 마멀레이드는 어디, 필립공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어디 하는 식으로 모든 물건의 위치를 밝혀 놓은 ‘지도’가 지급됐으며 필립공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읽는 것은 경마전문지 <레이싱 포스트>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런가 하면 여왕이 모닝 커피를 마시는 절차는 마치 루이 14세가 옷 입는 광경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해 하녀가 커피를 따라 하인에게 넘기면 하인이 스무 걸음을 걸어 시종 대기실에 전달하고 시종이 다시 여덟 걸음을 걸어 여왕의 식당으로 가져가는 식이라는 것.
한편 <미러>도 버킹엄궁 잠입취재로 모은 정보를 더 이상 보도하지 않겠다고 24일 약속했다.
<미러>는 패리 기자가 촬영한 미보도 사진들을 반환하고 여왕의 소송비용 2만5천파운드(5천만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