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영국의 반전·반부시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전쟁중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등 반전단체들은 오는 20일을 반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런던 도심 트라팔가 광장에서 최소 6만명에서 최대 10만명이 참가하는 ‘스톱 부시(Stop Bush)’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런던 경찰청은 5000명의 경찰력을 동원,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철통 경호를 펼칠 예정이지만 반전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왕실 초대를 받아 버킹엄궁에 머무르는 국빈 방문으로 미국 대통령으론 1918년 우드로 윌슨 이후 처음이다. 캐네디와 닉슨, 레이건, 클린턴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 영국을 찾았지만 국빈 자격은 아니었다.
영국 언론들은 부시가 수만명의 인파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형이 땅바닥에 끌려다니며 짓밟히는 굴욕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중지연합 관계자는 “가장 인기없는 지도자가 부당한 전쟁을 끝낸 뒤 영국을 방문한다”면서 “우리는 영국민이 그의 방문을 거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사임했던 토니 블레어 정부의 전직 각료들도 이날 부시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전쟁에 반발해 노동당 하원지도자직을 사임한 로빈 쿡 전 외무장관은 일간지 <데일리 미러> 기고문을 통해 “좌파를 자처하는 노동당 정부가 부시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모순의 극치”라면서 “부시의 국빈방문은 영국의 국가적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데일리 미러>는 이와 함께 영국민의 절반이 ‘부시 대통령을 세계 평화의 위협’이라고 지목하고 응답자 75%가 부시 대통령을 국빈 초청할 이유가 없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를 ‘부시 꺼져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다루는 등 부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냈다.
이라크 전쟁 직후 사임한 클레어 쇼트 전 국제개발장관도 <이브닝 스탠더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매우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으며 세계를 더욱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다”며 ‘스톱 부시’ 행진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행동 반경도 줄어든다. 영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총리관저, 정부청사, 9·11 추모행사장, 웨스트민스터사원 안에서 일정을 소화하도록 했다. 또 지난달 호주에서 있었던 야유 사태 등을 우려해 의회연설 일정도 잡지 않았다.
이같이 반부시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파이낸셜타임스>, <인디펜던트> 등 우파 성향의 일간지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유는 아름다운 것”이라면서 “국민이 자신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나라를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저녁 런던에 도착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거처인 버킹엄궁 귀빈실에 묵을 예정이며 20일 다우닝가 총리 관저에서 미·영 정상회담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