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손길승 회장(사진)이 지난해 대선자금 제공과 관련한 ‘기밀성’ 발언을 연일 쏟아내면서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손회장은 한 시사주간지를 통해 “‘집권하면 표적사정하겠다’고 해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줬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된 데 이어, “김대중 정권때 민주당에 4년간 140억원, 한나라당에 8억원을 줬다”고 말했다.
손회장은 또 최근 재계 고위인사들의 모임에서 “지난해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열린우리당(당시 민주당) 이상수 의원이 찾아와 ‘당신들이 민주당에 낸 돈은 그들(구주류측)이 다 쓰고 우리(노무현 후보측)는 한푼도 못 쓰니 민주당에 준만큼 달라’고 해 다시 25억원을 만들어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표적사정 운운은 허위”라며 펄쩍 뛰었고, 민주당은 “후원회로 들어온 돈은 합법적으로 처리됐다”며 불법성을 부인했으며, 열린우리당은 “손회장을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며 ‘25억 선요구 주장’을 반박했다.
■ 한나라당 = 박 진 대변인은 13일 “최돈웅 의원은 ‘SK측에 후원금을 달라고 요청한 적은 있으나 액수를 지정하거나 표적사정을 언급하는 등 강요나 강압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손회장은 누가 표적사정을 하겠다면서 액수를 지정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박대변인은 또 “최의원이 접촉한 사람은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이지, 손회장이 아니었다”면서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우리당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손회장이 시사주간지에 보도된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시사주간지측의 성의있는 해명과 정정보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민주당 = 16대 총선을 전후해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옥두 의원은 ‘SK가 매년 연초에 25억원을 민주당에 제공했다’는 주장에 대해 “모든 것은 후원회에서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얘기에 전혀 관계가 없다”며 “후원회에서 정상적으로 법과 절차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영수증에 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이상수 의원이 더 달라고 한 25억원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상관없는 일이며 그쪽(우리당)에 물어봐야 할 것”이라며 공을 넘겼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상수 의원이 한도가 넘은 것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며 “16대 총선후에는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되는 분위기여서 민주당에서 후원금을 모금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 열린우리당 = 이상수 의원은 손회장의 ‘25억 선요구’ 주장에 대해 “손회장을 만난 사실도, 전화한 사실도 없으며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과 전화통화한 후 15억원을 직접 만나 전달받았고 10억원은 간접적으로 받았을 뿐”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김원기 의장도 “대선자금의 불법성이 대부분 한나라당에 관한 것이나 우리가 공개한 액수에 다소 잘못이 있는 부분은 (국민들께) 죄송하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원칙을 지켜 현실적 고통을 인내하면서 서러운 선거운동을 했고 그사실은 정치권과 언론이 다 아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회장의 발언 배경 = 정치권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재계 인사 모임에서의 발언은 언뜻 보면 이상수 의원에게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공식 후원금은 만져보지도 못했다”며 민주당 구주류측에 화살을 돌렸던 이상수 의원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에 대한 ‘표적사정’ 발언으로 미뤄볼 때 손회장이 은근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불리한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정권의 ‘선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