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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 아내가 스승입니다
코리안위클리  2003/11/20, 04: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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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깼다가 다시
게으름을 피우며
이리저리 하루를 굴려보다가
일어나 앉아 오늘을 계산하다가 다시
눈감고 내려다보는
저편에, 하얀 너울이
블랙홀처럼 가물가물 손짓하는
우주의 바깥에
빛도 어둠도 깨어나지 않는
아직 거기에
아이들 끝없이 지저귀기 시작하고
아내는 서두르며 하루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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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가족>

원고 마감시간은 다되어 오고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어서 막막하던 참에 집안일 하느라고 쉬지 않고 들락날락 거리는 아내를 보자 ‘그래 오늘은 저 ‘여자’ 이야기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아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남세스런 일이 아닌 데다가 자칫 잘못하면 불출이 소리를 들음은 물론 아내에게 두고두고 바가지를 긁히게 되는 게 확실한 일이라 주저되기도 하지만, 괜히 듣기 좋은 소리나 뻥튀기 하지 않는다면 한번쯤 아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내 아내를 뜯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뭐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느냐 하겠지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이를테면 같이 바깥일을 보고 돌아와 피곤하고 지쳤을 때 나는 목욕하고 새옷 갈아입고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데, 이 여자는 밥을 하랴 청소를 하랴 빨래를 챙기랴 아이들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해야 합니다. 이튿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홉 시가 넘도록 잠자리기에 누워 있자면 이 여자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하고 식구들 밥먹이고 아이들 등교까지 시키고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한 일입니까? 아아, 그런데도 나는 말로만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이렇게 부질없는 죄만 덧쌓고 있습니다. 안 되는 걸 어쩝니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쩌다 함께 집안 일을 해도 나는 금방 싫증도 나고 힘도 들고 해서 일어나 버리는데 이 여자는 참 끈질기게도 끝까지 일을 다합니다.
그렇다고 이 여자가 아주 처음부터 가사노동으로 단련된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영국에 올 때까지 교편을 잡느라고 집안일 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영국에 와서야 밥을 하고 김치를 담그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사람과 집안의 일을 치다꺼리 하는 일, 그런 일을 두고 ‘살림’이라 합니다. 살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 여자의 ‘살림’ 덕분에 살면서, 나는 지금 아내를 뜯어먹고 산다고 말했다 하여 약간 거친 표현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어찌 빈말일 수야 있겠습니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나서 뒷골이 뻐근하기에 소파에 벌렁 누우며 “아이구, 피곤하다”하고 엄살을 피웠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갖다 주던 아내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이구, 나도 죽겠다”하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했다고 죽겠다는 거요?” 그러자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몰라서 물어요?”하고 약간 독이 오른 말투로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아차 내가 이거 또 말실수를 했구나 하고 속으로 미안하던 참인데 아내가 그렇게 나오니 더욱 겸연쩍기만 했습니다. 이 여자가 온종일 거의 쉴 땀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고 일고 있었으니까 할말이 없어 그냥 누워 있는데 아내의 말이 계속 되었습니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원고를 쓰면 돈이 생기고 이름도 나고 책으로 남기도 하지 않느냐?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이게 뭐냐? 아무리 해도 무슨 보람이 없다. 밥을 해 놓으면 다 먹어 치우고 빨래를 하면 도로 더러워지고 청소를 해도 금방 어지러워지고…, 도무지 남는 게 있어야지. 그렇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대충 이런 뜻이었습니다. 할 말은 더욱 없어 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누워만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당신 말이 틀린 것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이 기회에 꼭 한마디 해줄 말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노동이 나의 노동에 견주어 보람이 없다고 했지만 당신이나 나나 말이 나온 김에 반성을 하자. 나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해 왔는데, 여자가 하는 집안 일은 하찮은 것이고 남자가 하는 바깥일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한 일은 안해도 되는 일이다. 글은 안 써도 되고 안 읽어도 되지만, 하지만 당신이 하는 일, 밥하고 빨래하고 식구들 시중 들어주는 일이야말로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일이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안 좋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고치지 않는 한 이 세상은 건강한 세상이 될 수 없다”는 식의 말로 세상까지 들먹여 가며 제법 그렇듯 하게 대충 위기를 넘긴 것 같습니다.
땅속에 묻힌 뿌리처럼 그렇게 이름 없이 말없이 일하는 여자의 노동을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알아 존경하고 받드는 그런 가정과 사회가 되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서 말한 ‘여자’를 좀 더 키워 이 시대의 육체적인 노동자로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정신 노동자에 비하여 육체 노동자가 우월한 대접을 받는, 아니 적어도 동등한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이라면 기꺼이 ‘사회주의자’가 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미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 말입니다.
내가 아는 한 독신여자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10여 년이 되었다는 말에 “아이구 끔직해 지겹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뜻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내심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지겹다면 끈질기게 남과 자신을 속이고 있는 이 몸뚱아리가 훨씬 더 지겹습니다. 그러나 지겨우면서도 보듬어 안고 살아야 하는 이 몸뚱이처럼 부부 사이도 대개 그와 같지 싶습니다.
아무튼 나는 내 아내이기도 하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여자한테서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밝은 생명력을 발견하고 은근히 놀라는 중입니다. 어째서 남자보다 여자한테서 더욱 질기고 깊은 인내심이라 할까 생명력이라 할까 그런 힘을 느끼게 되는 거냐는 질문에 아기보(자궁)가 속에 들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고 싶습니다.
간교하기로도 물론 내가 아내보다 한수 위입니다. 나는 가지지 않는다 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그 무엇 하나 없습니다. 버린다고 말하면서 버리는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가지고 싶어하면서 거 어느 하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하니 묘한 인생입니다. 이런 걸 두고 ‘여자의 일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성스럽게까지 보이니 이 또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생이불유(生而不有)”라는 “낳고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여자하고 어느 만큼은 통하는 구절이다 싶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해야겠다는 자의식 따위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흔적조차 없는데 결과가 그러하니 얼마나 신통한 일입니까?
남편들이여, 아내가 스승입니다. 열심히 배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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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꽃잎에 매달린
이슬로 태어나고 싶다
이슬이 되어
아침마다 찾아드는
그대의 눈동자를
담아두고 싶다

나는
그대의 두 눈에 담긴
별이 되고 싶다
별이 되어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대의 길을
밝혀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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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나는 그대의>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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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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