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주한 외국인 유색 노동자에 ‘이중성’ 차별·무시
백인엔 굽신 유색인은 무시 어이없는 인종차별
나이지리아 출신 우케부(33)씨와 임신 7개월째인 필리핀인 로웨나(여·29)씨 부부. 며칠 전 지하철을 탔을 때 몇몇 한국 청년들 옆에 서게 됐다. 이들은 우케부 부부를 향해 “도대체 저 뱃속에서 아이가 무슨 색으로 나오냐?”고 물으며 낄낄댔다. 우케부씨는 아내에게 “신경쓸 것 없다”고 말했지만 지하철에서 내린 그들은 길바닥에 앉아 같이 울고 말았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처음으로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2년 전 여름, 로웨나가 우연히 습득한 휴대전화기를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했을 때도 집으로 찾아온 50대 여성에게 오히려 ‘도둑’으로 몰려 온갖 욕과 삿대질을 당했다. 우케부씨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도둑’이나 ‘전염병자’ 취급을 받는 이 사회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주한 외국인 수는 모두 62만9천여명. 이 중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 수는 총 36만명으로 밀입국자까지 포함하면 40만명을 넘는다. 과거에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또는 외교업무 관련 종사자, 관광객 정도에 불과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돼 지금은 전체 외국인의 반 이상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피부색과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에서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목원대 장수찬(비교정치학) 교수는 “한국인은 영·미 등 선진국가들의 국민들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의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저발전 국가들, 특히 대부분 3D 업종에 종사하는 유색 외국인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차별적인 이중성을 띤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및 전북대학교와 함께 올 초에 발표한 ‘국내 거주 외국인노동자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50.7%가 “직장 내에서 욕설 또는 조롱을 받았다”고 답했으며 이들에게 조롱과 욕설을 한 사람은 동료 한국인이 67.3%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직장상사가 49.1%로 조사됐다.
또 ‘외국인이기 때문에 식당이나 가게에서 의심받거나 불친절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19.9%로 조사됐고, ‘식당이나 가게에서 한국인에게 이유없이 무시당하거나 욕설을 들은 경험’은 18.9%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이맘 때 입국해 석 달 동안 가사 도우미로 일하던 한 말레이시아인 여성은 ‘주인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은행거래까지 정지된 일을 당했다.
“그 집에서 ‘도저히 노예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며칠 뒤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는데 돈을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집주인이 ‘한 달에서 사흘을 못 채우고 나갔기 때문에 선불로 받아간 월급을 쓰게 할 수 없다’며 거래하는 은행지점에 아는 사람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급정지를 시킨 겁니다. 제가 한국사람이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입국한 케냐 출신 마라톤선수 A씨는 공항 입국 과정에서 “여행목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두 시간 이상 잡혀있기도 했다.
작년 11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 결국 물감에 ‘살색’ 명칭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성남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물감에 ‘살색’이라는 명칭만 사라졌다고 해서 한국인들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여전히 한국인들은 백인들을 보면 ‘차 한잔 하겠습니까?’ 하면서 영어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유색인종들에게는 대뜸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며 만만하게 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11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