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방송 기자가 영국 체셔 소재 국립경찰훈련소에서 몰래카메라로 찍은 경관들의 훈련모습이 지난 21일 전파를 타면서 영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마크 달리 기자가 7개월간 경찰관으로 위장취업해 촬영한 문제의 다큐는 “히틀러의 생각이 옳았다” “아시아인을 죽여 철길 밑에다 묻어버리겠다” 등 경관들의 인종차별적 극언을 담고 있다. ‘KKK’단의 상징인 하얀 머리두건을 만들어 쓴 경관도 나왔다.
이 경관은 10년전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흑인소년 스티븐 로렌스는 “죽어도 싸다”며 피해자의 부모들을 “식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방송 직후 파문이 거세지자 다큐에 훈련생으로 등장한 경관 8명 중 5명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른 3명은 정직을 당했다. 방송 전까지 “가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소설을 쓰려 한다”고 비난했던 데이비드 블런킷 내무장관은 방송 후 “폭로된 사실이 끔찍하다”며 내사 착수와 신입경찰 중 인종차별주의자 색출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 경찰 고위간부도 “영국 경찰이란 사실이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은 영국 경찰 내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주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한 영국 경찰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려놓았다. 영국 경찰은 1993년 18세 흑인소년 로렌스가 백인청년들에 의해 칼에 찔려 살해됐으나, 아무도 기소되지 않은 영국판 ‘로드니 킹’ 사건으로 ‘제도적인 인종차별’을 행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99년부터는 차별을 뿌리뽑기 위한 내부적 노력이 성과를 거뒀다는 자체평가도 있었다.
인종평등위원회 트레버 필립스 회장은 “이는 몇몇 신입경찰의 튀는 행동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행동양식의 일례”라면서 “공식적으로 처벌 대상이지만 경찰 동료들 사이에서는 묵과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8월 취재기자가 잠입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조사에 나서 달리를 적발했다. 경찰은 달리를 경관 봉급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사기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영국 경찰은 다음달 열리는 재판에서 달리를 처벌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