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조선> <동아>에 전면전 선포 “외부요인에 대해 이렇게 반발한 적 없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
한국방송과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싸움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최근 이들 언론사의 지면과 방송을 통한 대립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두 신문은 지면에서 한국방송의 정연주 사장과 이종수 이사장에게 ‘빨간색’을 덧칠하는 한편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자유선언 토요대작전>과 같은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사상 시비를 걸 정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태다. 한국방송도 10월11일 <한국사회를 말한다>에서 이들 족벌언론의 폐해를 지적하는가 하면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에서 이들의 무리한 색깔몰이를 지적했다.
송두율 보도, 갈등의 폭발
나아가 한국방송의 기자협회·PD협회·기술인협회 등 각종 직능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어 추가 행동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 현재의 국면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한국방송 구성원들의 다수가 조선·동아의 보도가 자신들의 명예를 흠집내기 위한 악의적 공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지난 4월 정연주 사장의 취임을 전후해 조짐을 보인 바 있다. 동아는 당시 지명관 이사장의 말을 인용해 정사장 선임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보도를 내보냈고, 조선 등과 함께 정사장과 두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조선·동아의 시각으로 보면 정사장은 <한겨레> 논설주간일 때 쓴 칼럼을 통해 조중동의 신문시장 과점에 따른 여론의 왜곡과 족벌언론의 사주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거듭 지적해온 ‘위험인물’이었던 것이다. 과점신문의 상징인 ‘조중동’, 언론행위의 폭력성을 꼬집은 ‘조폭언론’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바로 정 사장이다.
이후 봄 개편에서 선보인 <미디어포커스>는 거대 신문들의 잘못된 보도 행태를 꼬집는 동시에 그 폐해를 잇따라 지적했고, 족벌신문들은 반발했다. 조선이 7월30일치에서 청계천에 가면 M16도 구할 수 있다고 한 보도를 <미디어포커스>가 ‘근거 없다’고 비판한 뒤 한 차례씩 공방을 주고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때도 이미 한국방송 일각에서는 ‘조중동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전론이 일었지만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갈등의 폭발은 일견 엉뚱해 보이지만, 송두율 교수의 입국에서 비롯됐다. 송교수가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수세력의 담론을 만드는 진지 구실을 하는 조선·동아의 파상공세가 시작됐고, 그 화살은 송교수를 비롯한 해외 민주인사들을 소재로 다룬 <한국사회를 말한다>에도 겨냥됐다. 특히 송교수를 일방적으로 미화했다는 보수언론의 공세가 이어진 가운데, 지난 10월2일 열린 한국방송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연주 사장 간첩 연루설’과 ‘이종수 이사장의 송교수 기획입국설 연루’ 의혹을 잇따라 제기했다. 조선·동아는 물론 때를 만난 듯 이를 대서특필했다.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이 김일성 시계를 미화해 물의를 빚고 있다는 7일치 동아일보 보도는 보수신문이 한국방송에 대한 색깔몰이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북한에서는 이렇다더라’ 정도의 우스갯소리를 한 것을 진지하게 꾸짖는 동아와, 이 기사를 인터넷판에서 받은 조선의 시각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던데다, 동아일보가 2001년 1월에 보도한 기사는 그들의 시각대로 따지자면 김일성 시계를 더 미화한 셈이 된다는 사실이 바로 그날 <오마이뉴스>에 의해 폭로됐기 때문이다.
이때를 즈음해 기자협회 한국방송지회와 PD연합회, 기술인협회는 잇따라 대표자 또는 전체 모임을 연 뒤 성명을 내어 한국방송 때리기에 나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기자협회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관련한 문제에 대해 자체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거웠을 뿐 아니라, 사내 일부로부터 “기자들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온 상황에서 공개적인 의견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내용도 파격적이어서 한나라당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사적인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뉴스를 통해 이를 보도하며 동아의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을 촉구했다.
“눈엣가시 프로그램들을
위협하라”
PD연합회는 한발 더 나아가 동아·조선 기자의 취재 거부를 결의하면서 이들의 한국방송 출입을 금지하고 신문 구독을 중단할 것을 회사쪽에 요구했다. 동아·조선이 이에 지면을 통해 또다시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조선·동아가 이처럼 끈질기게 한국방송을 문제삼는 이유는 뭘까 이들이 그동안 유지해온 헤게모니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가장 유력할 듯하다. 국가보안법을 보루로 삼고, 보수적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이에 어긋나는 경우는 보도를 통해 가차없이 달려드는 이들의 사회적 담론 생산능력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90년대 이후 언론권력, 특히 신문권력이 정치권력의 힘을 넘어섰다는 데는 많은 신문방송학자나 사회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다. 그 언론권력의 중심에는 족벌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조중동이 서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현대사>처럼 보수언론과는 근본적으로 시각을 달리하는 프로그램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보수언론의 담론은 조금씩 잠식당할 수밖에 없고,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매체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여 <미디어포커스>의 주요 소재로 여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들 보수언론이 다뤄지는 것도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와 같은 해석은 보수언론과 공영방송 사이의 대립 1차전이 일었던 지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때를 돌이켜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때는 문화방송이 4월부터 역시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비평>을 방송하면서 보수언론의 극렬한 반발이 시작됐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본격 신문비판이 시작되자 주요 타깃이 된 보수언론은 지면뿐만 아니라 소송을 통해서도 대응에 나섰다. 이후 조선·동아는 미디어면과 저널리즘면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방송(특히 문화방송) 비판에 나섰다. 지난해 서해교전 때 우리 어선의 월선이 교전의 빌미가 됐을 수도 있다고 보도한 문화방송과, 이에 대해 ‘어느 나라 언론이냐’며 묻고 나선 조선·동아의 대립에서 보듯 문화방송과 보수신문의 대결은 ‘봉합’의 수위를 넘어섰다. 이는 언론사간에 ‘침묵의 카르텔’을 깬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로, 상호 비방이 아닌 건전한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다.
일전불사, 신문과 방송의 차이
한국방송과 조선·동아의 대립이 어디로 흘러갈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사적 차원에서의 ‘일전불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의 한 간부는 “만약 붙는다면 한달이면 우리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면서도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그렇게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아·조선과 같은 신문은 사주의 결심으로 가능하지만, 한국방송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협회와 PD협회 등의 요구가 관철되기에도 현재의 상황은 아직 임계점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방송의 한 노조 간부는 대립상황이 오래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방송 안에서 외부 요인에 대해 지금처럼 이렇게 반발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흐름은 의미가 있다. 지금 당장 들고 일어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움직임이 자발적인 것인데다 예전처럼 간부들의 억압도 없어 장기적으로 조직문화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미 시작된 변화는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으며,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