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사과 속에 숨어 있다
매끈한 광택과 향기는
한 여름의 햇볕이 어떻게
사과나무의 수액을 불로 지져
과일을 만들었는지 말해준다
내 마음도 사과처럼 잘 익은
광택이고 싶다
훗날 내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여쁜 처녀를
배필로 맞을 때
또 손자와 함께 사과를 깎을 때
내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잘 익은 사과처럼
세상 속에 있는 것임을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이 모든 수고로움이
영원히 돌고 도는
생명의 놀이라는 사실을
나의 시 <가을 생각>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한 마음씨 착한 나무꾼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한참 나무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새소리가 아주 예쁘고 아름다워서 이 나무꾼 할아버지는 일손을 멈추고 새소리를 향해 머리를 들었더니 가까운 나뭇가지 위에 기가 막히게 예쁜 새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예쁜 새인지라 가까이 가서 보려고 다가섰더니 새는 그만 저만큼 날아가 앉는 것이었습니다. 다가 가니까 저만큼 날아가 앉고, 또 다가 가니까 다시 저만큼 날아가 앉고… 그러기를 한식경, 나무꾼 할아버지는 그만 지치고 말았습니다.
배도 고프고 목도 타고… 둘러보니 지금 그 새가 앉아 노래하고 있는 그 나무 아래 시원한 샘물이 솟구치고 있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한 걸음에 달려가서 두 손으로 마구 샘물을 퍼 마시고선 그 예쁜 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서 어두워지는 산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빈 지게를 지고서….
그런데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웬 낮선 젊은이가 말도 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요?”하고 야단을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각설(却說). 결국 그 샘물을 마셔서 젊어지게 된 걸 알게 된 이 나무꾼 할아버지 내외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그 길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어제처럼 다시 그 예쁜 새가 나타나 길 안내를 해주었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만큼 새소리에 취했고 샘터에 이르렀을 때는 꼭 어제의 할아버지 만큼 목이 말랐기 때문에 꼭 고만큼 샘물을 마셨고, 그래서 꼭 할아버지만큼 젊어져서 좋아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 혼자 사는 꾸러기 할아버지가 이 일을 알게 되자 자꾸 그 샘물이 있는 데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이 할아버지는 무슨 꾸러기냐 하면 욕심꾸러기, 심술꾸러기, 투정꾸러기 등등 이 세상의 온갖 못된 꾸러기는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못된 꾸러기 영감이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가 된 나무꾼이 이 꾸러기 영감에게 그 샘으로 가는 길(방법)을 가르쳐 주자 꾸러기 영감은 쏜살같이 그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예쁜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고 있는 걸 보자마자 꾸러기 영감이 “옳지, 이 새로구나. 이놈, 어서 길을 안내해라”하고 소리치며 지팡이를 휘둘러 댔기 때문에 새는 노래할 새도 없이, 잠시 나뭇가지에 앉아 자기의 예쁜 자태를 뽐낼 틈도 없이 허겁지겁 계속 날아 갈 수 밖에 없었으므로 순식간에 그 샘이 있는 곳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허겁지겁 달려왔으므로 목도 몹시 탓겠지만 이 샘물을 마시면 젊어진다는 생각에 꾸러기 영감은 정신없이 샘물을 마셔대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제는 젊은이가 된 나무꾼부부는 해가 저물어 가는 데도 돌아오지 않는 꾸러기 영감을 걱정하다가 횃불을 켜 들고 찾아 나섰습니다. 그 산에 이르르니 다시 그 예쁜 새가 나타나 길을 안내 했고 또 이제는 세 번째가 되니까 퍽 쉽게 샘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꾸러기 영감은 없고 벗어 논 옷만 덩그렇게 놓여 있는 겁니다.
‘아뿔싸! 이 영감이 필경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간 게로구나!’ 하고 불쌍하게 여기며 입고 있던 옷이라도 영감 대신 묻어줄까 하고 옷을 집어 들려고 보니까 아, 글쎄 놀랍게도 그 옷 안에 한 갓난아기가 꼼지락거리며 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이도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이제는 갓난아기가 된 꾸러기를 데려다가 자식으로 삼아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랍니다.
이 옛날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물론,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분수껏 착하게 살라는 것일 겝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전해주는 의미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즉 그 나무꾼 할아버지가 젊어진 것은 그 샘물을 마셨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미 그 예쁜 새를 보고 취했을 때 그렇게 된 것이고, 좀 더 소급해서 말한다면 예쁜 새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었고 일손을 멈추고 그 새를 따라 나설 수 있는 그 나무꾼 할아버지의 심성 자체가 천진난만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야 어디 새소리를 듣고 그리 쉽게 머리를 들겠습니까? 설령 머리를 든다고 할지라도 그 나무꾼 할아버지처럼 정신없이 따라 나서겠습니까?
그러니 이 나무꾼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옴직한 이들이지 우리의 현실에서는 거의 찾기 힘든 인간형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관심을 꾸러기 영감에게로 돌려봅시다.
꾸러기 영감은 새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새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젊어지는 샘물을 향한 전력질주 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자기의 욕심만을 관철하려는 인간일 뿐입니다.
이 꾸러기 영감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또 누구입니까? 당신은 이 꾸러기 영감의 경주를 구경하는 구경꾼에 불과합니까?
그건 당신 자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다만, 이 꾸러기 영감은 젊어졌습니다. 아니 젊어지다 못해 갓난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의 비밀한 교훈과 메시지는 이 꾸러기 영감에게 있습니다. 그는 행동으로 오늘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꾸러기들은 다 이리로 와라. 와서 이 샘물을 마음껏 퍼 마셔라. 맹꽁이 뱃대기가 되도록 마구 퍼 마셔라. 그러면 젊어진다. 어서어서 퍼 마셔라. 순 공짜다!”
정말이지 세상의 온갖 꾸러기들이 젊어지는 샘물로 와서 욕심 사납게 퍼 마시고 모두 갓난아기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권욕에 불타는 욕심꾸러기들은 영원토록 정권을 잡기 위하여 이 샘물을 마구 퍼 마실 일이고,
금욕에 눈이 벌개진 장사꾼은 온 나라라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어들이기 위하여 허겁지겁 이 샘물을 퍼 마실 일이고,
명예욕에 사로잡힌 허영쟁이들은 세상의 온갖 감투와 표창장과 훈장을 다 차지하기 위하여 정신 없이 퍼 마실 일이고,
어쨌든 이 세상의 온갖 꾸러기들이 다 모여 들어 저만 잘 살아 보겠다고 허겁지겁 정신없이 퍼 마셔만 준다면 좋으련만……
더 잘 나가고 싶은 꾸러기도, 더 교만해지고 싶은 꾸러기도, 더 고집부리고 싶은 꾸러기도, 더 예쁘고 싶은 꾸러기도, 그 어떤 꾸러기도 이 샘물만 정신없이 퍼 마셔준다면 좋으련만!
정작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예쁜 새 소리를 들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리를 들 일이고 예쁜 새를 보았으면 그 즉시 따라 나설 수 있는 나무꾼 할아버지의 순진한 심성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꿈꾼다
생명의 아름답고 푸른 힘을
공원 숲 속의 미루나무, 마로니에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처럼 자라서
생명 아닌 모든 거짓을
오연히 내려다보는
진실의 힘을.
나의 시 <나는 꿈꾼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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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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