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오히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홀가분하다. 한나라당도 그렇고, 민주당도 그렇고, 통합신당도 그렇고 모두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 아닌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으면 되는 일이고…, 청와대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직후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부결사태가 오히려 정치적 대립각을 분명하게 해준 면이 있어 반드시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이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됐다. 통합신당 인사들이 민주당 탈당을 강행한 뒤로도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 민주당적을 모양 좋게 정리할 것인가 답이 없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 다수의 반대로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사태가 빚어지면서 자연스레 민주당적을 정리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29일 노대통령은 전격 민주당을 탈당했다. 하지만 ‘작은 이득’을 얻기 위해 청와대가 잃은 것이 너무나 많다. 청와대 인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노대통령 취임 초에 비해 청와대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솔직히 어떻게 해야 대통령의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답이 안 보인다. 대통령후보 시절 노대통령이 보여줬던 위기 돌파 능력에 기대를 거는 정도다. 한마디로 그냥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7월 말 이후 30%대까지 떨어진 노대통령의 지지도는 좀처럼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대통령의 지지도가 8월 말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돌연 불참을 선언한 북한을 설득해 대회에 참석하게 했을 때 잠시 반등하기도 했으나 하락이라는 대세의 물꼬를 돌리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당장 현안으로 떠오른 사안마저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국론분열과 내부 갈등 표출이 불가피한 것들 투성이다. 당장 선택이 임박한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가 그렇다.
“솔직히 답 없어
시간 가길 기다릴 뿐”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50~60%가 파병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찬성하는 지지자는 30%대에 머물고 있지만 이 같은 국민여론만 믿고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청와대 외교안보팀은 지금의 파병정국이 취임 초 노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버금가는 외교안보상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파병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외교안보팀과 파병반대 입장인 정무팀 간의 의견대립이 팽팽한 상태다.
노대통령은 취임 후 주요 국정과제를 시행할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극단적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문제로 전쟁상황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빚고 있는 전북 부안사태가 그 대표적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