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 놀이중 여섯번째 놀이… 조선시대 사회적 모순 신랄하게 풍자
남사당패 ‘꼭두각시’
로열 페스티발홀에서
오는 17일(금) 하루 공연
“옛날에는 벌써 객석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이 참 잘한다 했었다. 지금은 남사당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으니까 우습지만. 옛날에 강원도 쪽으로 다닐 때는 사람들이 10리 20리 싸 들고 등불 들고 왔었으니까.
그걸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 잘되고 할 때는 괜찮은데 못되고 고생할 땐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집이 주먹밥 얻어먹고 그러나 생전 밥이라면 못해 먹어봤지 죽도 얻어먹고 겨울엔 정말 힘들었다.
인심도 부잣집이나 인심 쓰지... 그래도 그때가 좋은 것 같아. 입신이 성하고, 돌아다니며 두드리고 밥 얻어 먹고, 배고프면 허리띠 졸라매고...
그래도 그 놀이 자체가 좋은데다 역마살이 끼여 10, 20년 고향에도 못 가고 좇아 다니지. 아버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여기만 미쳐서 돌아 다녔어..”
(이상 1994년 9월14일 남성우, 양동일, 송창선, 송순갑, 박계순의 인터뷰 녹음 중 발췌)
조선 시대 전국을 떠돌며 민중들에게 오락을 제공했던 민중 유랑 극단인 ‘남사당패’가 ‘Tuned with Nature’라는 한국 문화 페스티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과 유럽 연합의 수교 40주년과 하멜 표류 350주년을 기념하여 유럽 4개국을 돌며 한국 전통 문화를 선보인다.
그 동안 영국 내에서 다양한 쟝르의 한국 문화가 소개되어 왔지만, 로얄 페스티발 홀에서 한국 전통 문화가 소개되기는 1994년 명창 안숙선의 춘향가 공연과 1997년 한국 페스티발 97의 일환으로 기획된 국립국악원의 공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남사당패와 그들의 놀이
구전에 따르면, 남사당 놀이의 역사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구한말까지 계속된 민중의 놀이다.
남사당패는 전국 각지를 돌며 대개 농어촌이나 성곽 밖의 서민층 마을을 대상으로 하여 모심는 계절부터 추수가 끝나는 늦은 가을까지 민중에게 오락을 제공하며 그 명맥을 어렵게 유지하였다.
이렇듯 어려운 시절을 거쳐 온 남사당 놀이는 일제 시대 한때 그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복원되어, 현재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보존, 전수되고 있다.
1. 비나리
남사당 놀이는 총 6가지로, 총 6~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공연장 주위를 한바퀴 돌아 관중을 유도하는 길놀이와 선고사와 후고사로 구성된 비나리가 있는데 비나리의 경우, 종교의식이 아닌 모든 일을 무사히 치룰 수 있도록 조상들에게 비는 의식으로써 선고사는 빠른 템포로 익살과 달거리로 풀어내고 후고사는 느린 템포로서 만복을 기원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2. 풍물(농악)놀이
이를 끝내면, 남사당 놀이의 첫 마당인 풍물(농악)이 시작된다. 남사당풍물놀이는 어떠한 지방색을 띄지 않은 각 지방의 농악을 두루 섭렵하여 재미있는 부분만을 골라 구성,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3. 버나
풍물놀이가 끝나고 분위기가 고조되면, 버나(쳇바퀴/대접돌리기)가 이어지는데, 이는 쳇바퀴나 대접 등 둥글게 만든 기구를 약 40cm 가량의 앵두나무 막대기 끝부분을 뾰족하게 깎아 기구를 돌리면서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 주는 놀이이다.
4. 어름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듯이 어렵다 하여 줄타기를 어름이라고 부르는데 어름이란 말은 남사당의 순수한 은어로써 그들만의 대화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시대가 변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5. 덧뵈기
덧뵈기는 덧(곱) 본다는 뜻으로 탈을 쓰고 하는 탈놀이이다. 이 놀이는 총 4마당으로 구성된다.
6. 덜미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놀아서 ‘덜미’란 이름으로 불리는 남사당의 여섯번째 놀이가 이번 영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될 인형극 ‘꼭두각시’이다.
신라시대에는 밤에 이 인형극 보고 재미있어서 웃느라 잠을 안잘 수 있었고 그래서 그 다음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
꼭두각시 놀음은 지방에 따라선 박첨지 놀음, 홍동지 놀음이라 불리우는데, 우리 나라에 유일한 전통인형극이란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배우기가 까다롭고 독특한 창법 뿐 아니라 삳받이(또는 산받이)를 중심으로 꾕과리, 징, 북, 날나리를 연주하는 잽이들이 함께 극을 꾸려 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형 주조종자인 ‘대잡이’와 부 조종자인 ‘대잡이 보’가 4~5명이 포장 안에 들어앉아 서로 대화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42개의 인형과 소도구를 조종한다. 이때, 인형조종자는 대화(재담) 중 몇몇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죽관(竹管)을 통한 가성(假聲)을 내어 마치 각 인형이 제각기 발음하는 것같이 특이한 효과를 낸다.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30분 정도로 전체 2마당 7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막 하나 하나가 전부 연관된 것이 아니고, 일부 막을 예외로 하고는 각 막이 독립성을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양반에 대한 풍자, 일부 처첩제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라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어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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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줄거리

▲ ‘꼭두각시’에 등장하는 42개의 인형들.
제 1 마당 박첨지 마당
제1막은 ‘유랑거리’로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며 경치 좋은 명승지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하루는 날이 저물어 여인숙에 들어가 머무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둥둥하는 소리가 나므로, 풍류를 즐기는 그는 지팡이를 짚고 그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그 곳은 남사당들의 놀이터였다. 남사당패 놀이판에 끼여든 이야기를 산받이(인형과의 대화자)와 나누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그는 음악 소리에 신이 나 놀이터에 나와서 한바탕 재담을 하고, 또 팔도강산 유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들어간다.
제2막은 피조리 거리라고도 하는데, 마을 뒷산에 있는 절의 상좌중들과 피조리들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것을 본 박첨지는 신이 나서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다가 보니, 그 두 사람의 피조리들은 자기의 조카딸과 조카며느리였다. 이를 보고 박첨지가 노해서 중을 꾸짖었으나, 중은 들은 체도 안하고 춤만 춘다. 그래서 일곱 동네에서 힘세기로 이름난 조카 홍동지를 부르러 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홍동지가 나와서 중들을 꾸짖어 쫓아내고 피조리들도 쫓아 들여 보낸 뒤에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제3막은 꼭두각시 거리로 박첨지는 그의 본처인 꼭두각시를 찾으려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의 첩인 덜머리집(돌머리집이라고도 함)을 데리고 나온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연히 본처를 만나게 되어 반갑기 한량 없었으나, 본처와 첩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자 본처는 박첨지에게 가산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이리하여 박첨지는 가산을 나누어 주는데, 첩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본처에게는 나쁜 것만 주니, 꼭두각시는 너무나 원통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금강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려고 길을 떠난다.
제 4막은 이시미 거리로 용강의 이시미는 배가 고파 조밭에 곡식을 먹으러 오는 새들을 모두 잡아먹는다. 그때 새를 보러 나온 박첨지를 이시미가 물어 죽이려 하는데, 홍동지가 대활약을 하여 이시미를 죽이고 박첨지를 구출한다.
제 2 마당 평안 감사 마당
제5막은 매사냥 거리로 새로 부임한 평안감사는 평양에 도임하자 마자 매사냥을 하겠다며 박첨지에게 포수와 사냥하는 매를 대령토록 하고 꿩을 여러 마리 잡는다.
제 6 막 상여거리로 평안감사 대부인이 죽었으므로 그의 상여가 나가는데, 뒤따라 가는 상주인 감사는 곡을 하지 않고,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며 기쁜 일을 당한 사람 같으므로, 조상 온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모두 욕을 한다. 마침 상도군이 발병이 나서 상여가 가지 못하게 되자, 힘센 장사 홍동지가 상여를 메게 되어 다시 떠난다(지방에 따라선 평안 감사의 상여라고도 함).
제7막 : ‘건사 거리’로 평안감사 대부인이 죽어 49일재(齋)를 올리기 위하여 명산에 절을 짓고 축원한다. 박첨지가 나와 장례 후 명당에 절을 짓겠다고 알리면 중 2명이 나와 조립식 법당을 짓고는 다시 헐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