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 올 9월 날씨가 보여주듯 여름은 길어지고 가을이 늦게 시작되는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속적인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의 변화로 산림 분포나 동식물 생태계에 변화가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기후마저 아열대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 가을은 아열대의 베트남을 떠올리게 한다”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목소리가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 한반도. 도대체 한반도의 기후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기온상승과 길어진 여름 짧아진 겨울
20세기 들어 우리나라의 연평균기온은 약 1.5도 상승했다. 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하면 도시화가 진행된 서울은 100년 사이에 7도나 높아졌다. 서울은 물론이고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열파’(30도 이상 되는 날이 5일 이상 계속되는 현상) 기간이 늘어난 반면 서리 일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기온 상승에 따라 한반도 계절의 시종일(시작되고 끝나는 날)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여름 시작일은 1920년대에는 6월9일이었으나 1990년대에는 6월1일로 9일 빨라졌고 가을의 시작은 9월10일에서 9월14일로 4일이 늦어져 여름은 13일이나 늘어났다.
반면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11월10일에서 11월19일로 9일 늦어졌고 3월24일이었던 겨울 종료일은 3월6일로 18일 당겨지는 등 겨울은 27일이나 줄어들었다.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상연구실장은 “계절별 일수 면에서 1920년대 ‘겨울-봄-여름-가을’이었던 한반도의 계절은 90년대에는 여름-봄-가을-겨울 순으로 변했다”며 “온난화로 인한 계절의 전이현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변화한 강수 패턴 강해지는 태풍강도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하절기(6~8월)동안 0.1㎜ 이상의 비가 내린 강수일수는 평균 47.2일로 지난 30년 중 가장 많았다. 하루 걸러 하루씩 내린 셈인데 이같은 경향은 9월 들어서도 계속됐다. 서울의 경우 23일까지 10일 동안 비가 내려 이미 예년 평균(8.7일)을 넘어섰고 강릉과 대전, 대구 등의 강수일수도 하절기의 강수량이 연중 강수량에 육박했다.
올 여름 전국 강수량 평균은 999.5㎜로 평년(699.7㎜)에 비해 절반 가량이 늘어 1987년과 1998년에 이어 이 분야 3위로 랭크됐다. 올해의 경우 장마의 개념도 사라졌다. 장마 시작 전에 흔히 나타나는 건조기가 없어졌으며 장마가 끝난 이후 강수일수가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
강수일이 늘어난 올 여름 강우 패턴은 그러나 최근 강우 패턴과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90년대 들어서는 연강수량이 늘어나고 연강수 일수는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 ‘강수강도’의 점진적인 증가로 90년대에는 일 강수량이 50㎜ 이상인 호우일수가 과거에 비해 22~25% 늘었다. 집중호우가 빈번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1990년의 경우 9월 한달 동안 서울에는 570㎜의 비가 내리기도 했다.
태풍의 강도도 강해졌다. ‘매미’는 초속 60m의 순간 풍속을 나타내 2000년 태풍 ‘프라피룬’때의 58.3m였던 종전 기록을 경신했고 중심 최대풍속은 ‘사라’ 때의 46.9m보다 빠른 초속 50m를 기록했다.
특히 매미는 지난해 전국을 강타하며 5조원대의 피해를 안긴 ‘루사’에 이어 찾아와 해가 갈수록 태풍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강한 추측을 낳고있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오재호 교수는 “해수면 온도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강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반도 아열대로 변하나
기온 상승, 강수 패턴 변화 등 최근 나타난 현상이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하는 징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생태측면에서는 아열대 생태의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열대 기후인 중국 하남지방이 원산지인 가중나무의 경우 과거 중부 이남에만 자랐으나 최근 서울 남산에서 다수 포착되고, 속리산에서 자라던 오죽이 서울에 정착하고 있다. 아열대성 수목병원균 푸사리움가지마름병도 96년 발견된 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고 동남아 원산 해충인 대벌레류도 83년 삼척에서 발견된 후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전성우 박사는 “우리나라의 식생은 온대와 아한대였으나 난대림들이 해안선을 따라 북상, 서해안은 군산 위쪽, 동해안은 강릉선까지 올라왔다”며 “남해안 온대림지역의 평균기온이 2도가 올라가면 아열대림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대다수 기상전문가들은 최근의 고온다우해진 기상변화만으로는 한반도가 아열대로 변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이동규 교수는 “올해는 4,5월부터 9월까지 비가 줄곳 내리긴 했지만 열대야와 일조량은 감소하는 등 아열대 기후의 특징이 온전히 나타난 것은 아니다”며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기후의 변화는 최소한 30년을 관찰해야 한다”고 판단을 유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