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거취 문제가 결국 김장관의 자진사표를 노무현 대통령이 수리하는 형식으로 일단락되게 됐다. 노대통령이 15일 태풍 피해 수습을 이유로 김장관의 사표 제출을 당분간 늦추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결말은 나있는 상태다.
대통령 결정과 민심이 다르면…
이 문제는 외견상 한총련의 미군부대 기습시위 책임을 둘러싼 한나라당 대 청와대간 기세싸움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노대통령과 김장관의 물밑 신경전의 여운이 좀더 깊게 비춰졌다.
김장관은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 표결을 관철하던 9월3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통해 ‘자진사퇴’ 입장을 천명하려 했다고 한다. 일찍부터 총선 출마(남해·하동)에 뜻을 두던 차에, ‘한나라당의 탄압’으로 중도 하차당한 것으로 부각될 상황이 물실호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미리 알고 뜯어말린 끝에 그날 김장관은 “대통령과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선에서 멈췄다.
노대통령은 9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건의안이 가결되고 난 다음에… 사의를 표명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해임건의안 가결이라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국민적 논쟁을 해야 한다. 그러면 장관이 사임하지 않아야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사임을 만류했다. …국정감사 받아주시고 정기국회 다 마치도록 해주면 그것이 최고 좋은 것이다.”
노대통령의 말은 첫째, 한나라당의 해임건의는 부당하다 둘째, 다른 장관들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가 나서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우겠다 셋째, 그러니 김장관은 국정감사(10월 중순)가 끝날 때까지라도 현직을 지켜달라는 것으로 요약됐다.
그러나 김장관은 추석 연휴에 고향을 방문하는 등 출마를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대통령 결정과 민심이 다르면 민심을 따르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해나갔다. 그는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됐다” “추석 연휴 뒤에 밝힐 것”이라는 등의 말도 했다.
이에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장관을 몇 차례 만나 설득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로선 대통령의 체면도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김장관은 한 차례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끝에 결국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9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임건의야 여전히 부당한 것이지만 국회의 위신도 생각해서…”라며 ‘국회의 위신 존중’이란 명분을 활용해 김장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신념으로 결속하는 새 문화는?
이런 전말은 한편으로 세상이 바뀐 점을 실감하게 한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경쟁력 있는 장관을 ‘징발’해 총선에 강제투입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통령은 더 일하라고 하는데도 장관이 부득부득 총선에 나가야 한다며 자리를 내던지는 모양이 됐다.
이를 두고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탈권위 시대이니까…”라며 옛날 기준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도 “손발이 맞아야 일을 하지”라며 탄식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노대통령이 휘하 장관도 휘어잡지 못하느냐라고 비칠 가능성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리틀 노무현’으로까지 불렸던 김장관의 처신도 개운치만은 않다. 총선 출마 자체를 나무랄 이유는 없지만, 하던 일의 마무리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맹목적 충성과 복종을 특징으로 하는 가신과 측근 문화는 노무현 시대와 더불어 분명하게 종말을 고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빈 공간에 신념과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결속하며 명운을 함께한다는 새로운 기풍이 쉽게 자리를 잡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