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오리털 파카 사드렸더니
얼마후 구걸 장애인이 입고 있어”
신도·목회자들 생전의 일화 모아
한목사 탄신 100주년 기려 묶어내
“1992년 한경직 목사님이 템플턴 상을 받을 때 일이에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시는 한목사님을 간신히 설득하여 수상식에 참석하게 됐지요. 출국 날 사람들이 기다리는데 목사님이 나오시지 않는 거예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목사님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쩔쩔매고 계셨어요. 열린 옷장을 보니 마땅한 윗도리가 눈에 띄지 않았어요. 결국 백화점에 들러 급하게 한벌 사서 공항으로 달려갔지요.”(나옥주·보성학원 이사)
20세기 한국 개신교가 배출한 최대 인물로 꼽히는 한경직(1902~2000) 목사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한목사에 대한 추억을 한데 모았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샘터)는 한경직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영락교회 사람들과 개신교 목회자·평신도들의 원고를 모아 펴낸 것이다. 공적·사적으로 한경직 목사를 잘 아는 필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사랑·청빈·온유·겸손의 인물로 기억한다.
한경직 목사는 옷이나 물건을 선물받으면 자신이 사용하지 않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게 주곤 했다. “한번은 오리털 파카를 선물해 드렸어요. 그런데 얼마 후 백병원 앞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이 그 옷을 입고 있더라구요.”(조정희·영락교회 은퇴권사) “누가 봉투를 놓고 가면 열어보지도 않고 모았다가 필요한 곳에 보내셨지요.”(강병훈·이화학원 이사장) 김덕윤 대윤건업 대표는 “몸이 불편하게 된 후 여러 차례 밤에 넘어져서 다쳤는데, 화장실에 갈 때 간병인을 깨우지 않으려고 혼자서 움직이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전했다.
한목사와 친했던 후배들은 그가 목회자의 전범을 보인 인물이라고 말한다. 강원용 목사(평화포럼 이사장)는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조정해서 하나로 만드는 한 목사의 능력에 감탄했다며, “언제나 ‘일보다 중요한 것은 화평·화합’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한다. 정진경 서울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는 영락교회 집회의 강사를 맡았을 때 새벽마다 문앞에 오렌지 주스 병을 놓고 가는 사람이 있어 확인했더니 한목사였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또 외제 물건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신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면모도 갖고 있었다.
한목사는 13세 때 결혼한 부인 김찬빈 여사를 몹시 위했다. 자신의 미국 유학 중 가족을 돌보느라 고생한 부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그는 김여사가 중풍으로 눕자 직접 목욕을 시키는 등 정성으로 돌보았다. 외손녀 이순형씨는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의 한복을 곱게 입혀주고 연지까지 바른 후 거울로 비춰주시며 ‘화장하니 정말 이쁘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여자한테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경직 목사는 또 한편 세상을 읽으려는 관심을 놓지 않았다. 김재광 토론토 영락교회 원로목사는 러시아에서 선교 활동 중이던 1992년 남한산성으로 한 목사를 찾아갔더니 <타임(TIME)>잡지를 읽고 있었고, 러시아 정세를 자기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영덕 전 국무총리는 “한경직 목사는 나라 사랑, 인간 사랑, 하나님 사랑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라며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새로 알려지는 여러 모습은 우리의 삶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