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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엔드에서 신작 뮤지컬을 올린다는 것은 이제 예술적 도전이 아니라 거의 금융상품에 가깝다. 노래가 좋아야 하고, 이야기가 좋아야 하고, 배우도 좋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Why Am I So Single?》의 조기 폐막은 한 작품의 불운이라기보다 웨스트엔드 상업 구조의 경고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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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엔드에서 신작 뮤지컬을 올린다는 것은 이제 예술적 도전이 아니라 거의 금융상품에 가깝다. 노래가 좋아야 하고, 이야기가 좋아야 하고, 배우도 좋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제목을 알아야 한다. 영화였거나, 소설이었거나, 스타의 이름이 붙어 있거나, 최소한 “아, 그거?”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안 그러면 아무리 좋은 작품도 객석 앞에서 먼저 신용심사를 받는 것 같다.
뮤지컬 식스《Six》처럼 완전히 새로운 뮤지컬이 세계적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Oklahoma!》, 《Cabaret》, 《Fiddler on the Roof》, 《Les Miserables》, 《Rent》처럼 우리가 ‘오리지널’처럼 기억하는 수많은 뮤지컬도 사실은 희곡, 소설, 오페라, 성경, 영화 등 기존 원천에서 출발했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는 늘 새로운 것을 말하지만, 실제 투자 구조는 오래된 이름을 사랑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창작된 《Why Am I So Single?》는 위험한 실험이었다. 《Six》를 만든 창작진의 신작이라는 점은 분명 강력한 홍보 포인트였다. 그러나 작품 자체는 영화 원작도 아니고, 유명 소설도 아니고, 대형 스타 캐스팅도 아니었다. 제목 역시 관객에게 “내가 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쉽게 말해, 제작자는 새 차를 내놓았지만 시장은 중고차 브랜드 보증서를 찾고 있었던 셈이다.
결과는 냉정했다. 《Why Am I So Single?》는 원래 2025년 2월 1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2025년 1월 19일 조기 폐막했다. 당시 제작진은 “현재 환경에서 새로운 뮤지컬을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작품의 실패를 단순히 완성도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더 구조적이다. 새 뮤지컬은 작품이 아니라 ‘인지도 없는 상품’으로 먼저 취급된다.
반면 《Six》는 예외 중의 예외였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Six》는 23개 상을 수상했고, 2022년 토니상 Best Original Score를 받았다. 또 Playbill은 2024년 7월 기준 《Six》의 두 캐스트 앨범이 10억 스트리밍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뮤지컬이 틱톡, 스포티파이, 팬덤 경제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Six》의 성공을 “그러니 새 뮤지컬도 가능하다”는 증거로 읽으면 위험하다. 오히려 정반대다. 《Six》는 새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영리한 포장지를 갖고 있었다.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라는 역사적 인지도, 걸그룹 콘서트 형식, 팝 디바 레퍼런스, 짧고 강한 러닝타임, 팬덤이 만들기 쉬운 캐릭터 구조가 있었다. 관객은 새 작품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이미 아는 역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러 갔다.
현재 웨스트엔드는 겉으로는 호황이다. 런던 극장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거의 네 명 중 한 명의 런던 방문객이 웨스트엔드 공연을 관람했다는 조사도 있다. 시장 전체는 커졌지만, 그 돈이 새로운 작품에 골고루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커질수록 투자자는 더 안전한 이름으로 몰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웨스트엔드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공연 시장처럼 보이지만, 상업 뮤지컬 시장은 점점 더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관객은 새로움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100파운드 안팎의 티켓을 사야 할 때는 익숙한 제목을 고른다. 제작자는 혁신을 말하지만, 투자 설명서에는 영화 원작, 유명 작곡가, 스타 캐스팅, 기존 팬덤을 먼저 적는다. 창작자는 모험을 해야 하고, 관객은 안전을 원하고, 투자자는 계산기를 꺼낸다. 이 삼각관계가 바로 새 뮤지컬의 비극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Operation Mincemeat》는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 웨스트엔드로 올라왔고, 2024년 올리비에상 Best New Musical을 수상했다. 공식 극장 자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연장되며 2026년까지 공연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 작품도 완전한 무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실화라는 강력한 소재가 있었고, 코미디 팬덤이 천천히 쌓였다. 즉 새 뮤지컬이 살아남으려면 ‘새롭지만 설명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결국 《Why Am I So Single?》의 조기 폐막은 한 작품의 불운이라기보다 웨스트엔드 상업 구조의 경고음이다. “좋은 작가의 신작”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지금 이 작품을 봐야 하는가”, “관객이 친구에게 한 문장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티켓값을 낼 만큼 이미 마음속에 어떤 기대가 만들어져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한국 공연계에도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이 커질수록 한국 제작자들도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우리는 새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이미 검증된 브랜드를 한국어로 다시 파는가. 둘 다 필요하다. 그러나 새 작품을 만들려면 작품 개발만큼이나 관객 개발, 팬덤 설계, 제목 전략, 가격 전략, 극장 규모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
웨스트엔드의 교훈은 단순하다. 새 뮤지컬은 죽지 않았다. 다만 그냥 태어나서는 안 된다. 요즘 새 뮤지컬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소개서, 사업계획서, 팬덤 전략, 한 줄짜리 홍보 문구까지 들고 나와야 한다. 이것이 지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가 새 뮤지컬에게 요구하는 잔인한 입장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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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만 구독자 이상을 갖고 있는 미국 뮤지컬 리뷰 블로그 onstageblog.com 기사 캡쳐 |
“한국 배우가 흑인을 연기해도 되는가?”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 《Hell’s Kitchen》논쟁
한국에서 제작되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은 과연 어디까지 ‘현지화’될 수 있을까? 최근 《Hell’s Kitchen》 한국 공연을 둘러싼 미국의 블로그 논쟁이 흥미롭다. 단순한 SNS 해프닝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있고 영국의 공연 제작사에서도 인지하고 있을만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어떤 관객은 ‘과민반응’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관객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위험한 접근’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공연계는 한국 라이선스 공연 소식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 어떤 작품이 올라가고, 누가 캐스팅되며, 어떤 스타일로 제작되는지는 대부분 국내 공연계 안에서만 소비되는 정보에 가까웠다. 그러나 분위기는 최근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Maybe Happy Ending》 이후, 해외 공연계와 팬덤은 한국 공연계의 움직임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공연 관련 이미지와 캐스팅 소식, 프로모션 자료 역시 SNS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해외 커뮤니티에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논쟁은 한국 라이선스 작품의 특정 프로모션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일부 해외 관객들은 드레드락스처럼 보이는 헤어 디자인과 스타일링에 반응했고, 일부는 그것이 흑인 문화의 외형만 피상적으로 차용한 접근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뉴욕 배경의 청춘 뮤지컬이 아니다. Alicia Keys 개인의 경험과 흑인 음악 문화, 흑인 여성의 정체성, 뉴욕 흑인 커뮤니티의 감각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원작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역시 주요 캐스팅의 상당수가 흑인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해외 팬들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국 배우들이 흑인 문화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그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단순한 현지화와 문화적 차용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아직 이 논쟁이 메이저 언론 차원의 본격적 비판으로 확산된 단계는 아니다. 현재는 브로드웨이 팬덤과 SNS, 일부 공연 블로그 중심의 discourse에 가깝다. 캐스팅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Alicia Keys 측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고 라이선스 문제가 발생한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질문이 이제 흑인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이 들어간 작품을 갖고 있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공연계 내부에서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작가와 제작사,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은 과연 어디까지 현지화될 수 있는가”, “흑인 문화 기반 작품을 아시아 시장에서 재현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조심스럽게 오가기 시작했다. 아직 공개적인 비판이나 공식 입장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공기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한국의 라이선스 공연은 더 이상 단순히 “잘 만드는 것”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어떤 맥락을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접근하며, 무엇을 존중하려 하는가까지 함께 질문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한국 공연계가 처음으로 진짜 세계 시장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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