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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an Per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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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멀레이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마음을 바꾸게 만드는 공연이 있다. 패딩턴 더 뮤지컬은 그런 작품이다. 단순히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라서 성공한 걸까? 물론 그것도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직접 보고 나면, 관객들이 웃으며 극장을 나서는 이유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런던 웨스트엔드는 늘 화려하다. 그러나 새로운 뮤지컬이 성공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특히 요즘처럼 제작비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패딩턴의 성공은 조금 특별하다. 개막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올리비에상 후보에 오르며, 몇 달 치 티켓이 매진되는 현상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재밌다”를 넘어 “왜 이 작품인가”를 묻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패딩턴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미 사랑받는 이야기니까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설명이다. 익숙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만큼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작품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 대신 실망이 더 크게 돌아왔을 것이다.
이 작품의 진짜 힘은 오히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바로 시간이다. 패딩턴 더 뮤지컬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개발 과정을 거쳤다. 작곡가 톰 플레처(Tom Fletcher)는 음악을 끊임없이 다듬었고, 연출 루크 셰퍼드(Luke Sheppard)는 작은 극장에서부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왔다. 극작가 제시카 스웨일(Jessica Swale) 역시 지역 극장과 보조금 극장을 오가며 작품을 발전시켜온 인물이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스타 창작자’가 아니다. 오랜 시간 실패와 실험을 반복하며 성장해온 사람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의 출발점이다. 웨스트엔드가 아니라, 작은 극장이었다는 점이다. 영국 공연계에는 흔히 ‘보이지 않는 사다리’ 같은 구조가 있다. 작은 극장과 지역 극장에서 시작해 점점 더 큰 무대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실패할 기회를 얻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패딩턴은 바로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구조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제작비는 계속 오르고, 극장들은 점점 더 안전한 선택을 하려 한다. 이미 검증된 작품이나 유명한 원작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다. 새로운 창작자에게 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시간을 줄이면, 작품도 얕아진다.
패딩턴의 무대가 유난히 풍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면이 바뀌는 순간마다 놀라움을 주고 런던의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대는 분명 큰 자본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티켓 가격으로 이어진다.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매진을 이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남는다. 이런 공연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패딩턴 더 뮤지컬은 우리를 웃게 만든다. 그리고 잠시나마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 좋은 작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돈,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만약 지금 우리가 작은 극장과 새로운 창작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이런 ‘기적 같은 히트작’을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패딩턴이 진짜로 남긴 것은 마멀레이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일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한국에서 해외 중장기 지원을 받으면서 속도를 내려고 한다면, 그건 지원 취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패딩턴이 증명하듯, 완성도는 시간에서 나온다. 서두르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어쩌면 해피엔딩’을 잃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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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밖에서 더 커지는 이야기
뮤지컬은 보통 극장에서 시작해 극장에서 끝난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무대를 벗어나 더 오래 살아남는다.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바로 그런 경우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이 이번에는 ‘소설’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작사 LW 엔터테인먼트(LW Entertainment)와 펭귄 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협업으로, 작품 4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다.
핵심은 ‘아워 스트레인지 듀엣(Our Strange Duet)’이라는 영 어덜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크리스틴 다에(Christine Daae)를 중심으로 팬텀과 라울 사이의 감정을 새롭게 풀어낸다. 베스트셀러 작가 에린 A. 크레이그(Erin A. Craig)가 집필을 맡았다. 기존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무대 뒤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와 사진집도 출간된다.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 등 주요 창작자들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어린 독자를 위한 동화 시리즈도 별도로 제작되며, 첫 권은 올해 9월 출간 예정이다. 오디오북 역시 함께 공개된다.
이 흐름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다. 공연이 더 이상 극장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신호다. 하나의 작품이 책, 오디오, 이미지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며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 특히 젊은 세대는 공연을 직접 보지 않아도 이야기를 먼저 다른 방식으로 접한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는 질문을 남긴다. 공연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가장 먼저 실험하는 작품 중 하나가, 오페라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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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LK 제작사 |
유튜브에서 웃고 넘겼다면, 지금은 27억 달러 소송 이야기다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영상이 있다. 라이온 킹(The Lion King)의 유명한 오프닝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를 두고, 한 코미디언이 “사자가 왔다, 어머!” 정도의 의미라고 농담하는 영상이다. 가볍게 웃고 넘기기 쉬운 장면이지만, 이 농담이 결국 수백억 원대 소송으로 번졌다.
문제의 중심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곡가 레보 M(Lebo M, 본명 레보항 모라케 Lebohang Morake)이 있다. 그는 디즈니 라이온 킹의 상징적인 오프닝 구호를 만든 인물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소송을 제기한 대상은 짐바브웨 출신 코미디언 런모어 조나시(Learnmore Jonasi)다. 조나시는 한 팟캐스트와 스탠드업 공연에서 이 오프닝 가사를 일부러 단순하고 우스꽝스럽게 번역해 웃음을 유도했다. 그는 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첫 구호가 그저 “와~ 사자가 왔다”라는 라는 의미였다라고 폭로했고 이를 들은 진행자와 관객은 웃음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레보 M 측은 이 표현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해당 가사의 공식적인 의미는 “왕을 찬양하라, 우리는 왕 앞에 머리를 숙인다”에 가깝고, 이어지는 구절 역시 승리와 존경을 담고 있다. 즉, 단순한 동물 묘사가 아니라 아프리카 전통과 왕권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번 소송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 제기됐으며, 약 2,700만 달러(한화 약 수백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레보 M 측은 이 사건으로 디즈니와의 관계, 그리고 로열티 수익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이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어디까지가 코미디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나시 측은 “코미디는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이라며,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노래의 의미를 더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함께 영상을 만들어 제대로 설명하자는 제안까지 했지만, 갈등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 사건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라이온 킹은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대표적인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영상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이 ‘농담 버전 번역’을 접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외 뉴스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공연을 어떻게 소비하고, 또 얼마나 쉽게 의미를 단순화하거나 오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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