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시간은 올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채, 성탄과 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예년에 비해 올해는 단풍이 더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10월 중 절정에 달했던 단풍은 어느덧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단풍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다. 화려했던 단풍이 낙엽이 되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멋지다. 어느 춤 감독이 디렉팅을 했는지 제 각각 다른 동선을 예술적으로 그리며 떨어진다. 참 신기하다. 하나님의 작품이다.
초록빛 잔디 위에 떨어진 뒷마당의 낙엽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너무나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녹색 풀밭 위에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지닌 채 연기자들처럼 누워있는 낙엽들의 모습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매일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딱 적합하다. 가지만 남긴 채 다 벗은 나무들도 아름답다. 석양이 질 무렵 윔블던 커먼(Wimbledon Common)의 벤치에 앉으면 저 멀리 사방을 둘러 싼, 잎을 떨구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의 유려한 실루엣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앞에서 카니자로 공원(Cannizzaro Park)까지, 숲길에서 가을 하늘까지 눈길이 가 닿는 곳마다 11월에 내려 주시는 은총이 깃들어 있다.
늦가을에 내리는 은총
비온 뒤 무지개 드리워진
가을 뒷자락
오늘은 잿빛 아닌
당당한 푸른 하늘 햇살 눈부신
뒷마당
겨울맞이 위해 잎을 버린
용감한 가로수들 빈 가지에
빛나는 절제와 포기의 열매들
주렁주렁 은총 나무
풍성한 열매 물고 뛰노는
산책 길 다람쥐
웅덩이엔 줄어든 물대신
가을 한가득 하늘 깃든
카니자로 파크의 연못
가을은 낙엽을 남긴 채
떠나가고 있지만
하늘 빛 드리운 내 마음은
찬란한 가을
쓸쓸함 대신 풍성함,
고독함 대신 즐거움
감사와 성숙함으로 채워진
시를 쓰지 않는 시인들의 마음
가을은 잃어버렸던 감사를 되찾는 계절이다.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 땅에 살고 있지만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평안 가운데 거하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의 파편들이 깨달음으로 찾아든다. 만약 몸이 아프다면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누워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심하게 아프다면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죽을병에 걸렸다면 우여곡절 끝에 죽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나만 건강하란 보장이 있는가? 나만 사고를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평안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아침 사무엘상 13장을 읽으면서 우리와 나의 모습을 보았다. 사무엘상 13장 22절.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칼과 창과 같은 전쟁 무기도 없이 농사짓던 삽과 곡괭이를 들고 싸움터에 나선 모습 - 아!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들 자신과 공동체, 뭐 대단한 것이 있을까? 이렇게 도전을 받았다.
사울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동정심이 일어난다. 부득이한 상황이지 않은가? 곧 블레셋 사람들이 치러 올지도 모를 긴급한 상황에서 사울은 약속된 7일을 기다렸다. 오히려 정한 기한을 지키지 않았던 것은 사무엘 선지자였다. 더 나아가서, 다른 것도 아니고 제사 곧 예배와 관련한 일은 왕의 임무가 아니라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책무라고 핑계할 수도 있다. 더구나 제사를 안 드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드리려는 열심히 지나쳤던 것을 흠잡으신 것일까? 약간 오버한 것으로 봐주시면 안 되었을까? 그렇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이 모든 의문에 관한 성경의 대답은 ‘아니오.’ 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사울의 잘못은 결정적이다. 여기서 끝이 나버린다. 왜 사울은 사무엘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즉시 회개하지 않았을까? 사무엘 선지자가 떠난 직후 사울 왕이 행한 일을 보면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사울은 회개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군사의 수를 세면서 하나님 앞에 교만의 죄를 더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완고하고 강퍅한 사울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읽으셨다. 사울이 버림을 받은 이유가 오늘 우리와 너무나 유사하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사무엘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켜주셨다. 사무엘의 기도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마치 자기와 군대의 힘으로 착각하였다. 기도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다? 이것이 교만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살 수 있다. 기도를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
은퇴하는 자리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장 23절)
철병거가 없어도, 쇠로 만든 칼과 창이 없어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겸손하자. 기도하자. 겸손히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자!
차가운 비가 내린다. 반쯤 옷 벗은 나무들이 비에 젖은 채 벌 서고 있다. 오래지 않아 떨어진 낙엽들은 빛이 바랜 채 발에 밟혀 부서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내가 타지 않는 버스는 자주 오고 붐비지도 않는데 내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윔블던에 사람이 많다. 사람이 아름답다. 전도하는 손길이 아름답다. 기도하는 소리가 아름답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무지개를 본다. 흐리지만 저 멀리 보이는 쌍무지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높아진다. 잠시의 엎드림만으로 단숨에 회복이 이루어진다. 아, 이제 얼마든지 겨울이 와도 좋을 것 같다.
김석천 목사
행복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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