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 화려한 데뷔… 빛나는 무대 그러나 갈라진 내면
한국인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진 뮤지컬 ‘더 그레이트 개츠비’가 뉴욕 브로드웨이의 성공을 거쳐 지난주 런던 웨스트엔드 콜리세움(2300석 규모) 극장에서 공식 개막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런던 무대에 오른 이번 작품은, 눈부신 무대와 의상, 그리고 강력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현지 주요 언론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압도적인 시각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지닌 감정적 깊이와 원작 충실성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선, 공연의 외형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많은 매체가 공통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The Stage》는 별 네 개를 부여하며, “시작은 약간 더디지만, 제이미 무스카토가 연기하는 개츠비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공연은 완전히 살아난다”고 평가했다. 무스카토의 절제된 감정 표현과 파워풀한 가창력은 “영화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폴 테이트 디푸 3세(Paul Tate DePoo III)의 무대 디자인, 린다 초(Linda Cho)의 의상, 그리고 코리 패탁(Cory Pattak)의 조명은 ‘눈부신 광경’을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WhatsOnStage》 역시 무대 미술과 의상, 그리고 앙상블의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에 높은 점수를 주며, “콜리세움 같은 대극장을 꽉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특히 레이첼 터커(Rachel Tucker)와 조엘 몬태규(Joel Montague)가 부른 넘버들은 공연의 백미로 꼽혔다.
그러나 무대의 화려함 이면에 자리 잡은 내면적 공허함은 다수 매체들의 공통적인 비판 지점이었다.
《The Guardian》은 별 한 개라는 혹평과 함께, “피츠제럴드가 창조한 인물들의 매혹적이고 복잡한 내면은 무대 위에서 종잇장처럼 얇아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극 중 닉 캐러웨이(코빈 블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피츠제럴드 특유의 시적 절제 대신, 수다스러운 현대 청춘물처럼 들린다”며, 극의 서정성과 깊이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평했다.
《Evening Standard》 역시 별 세 개를 매기며, “이 뮤지컬은 마치 초호화 여객선처럼 관객을 압도하지만, 그 내부는 공허하다”고 비유했다. 제이미 무스카토의 개츠비가 가진 보컬적 힘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복잡한 정체성과 내적 갈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강력한 퍼포먼스
원작의 정신을 잃어버린 변주
특히 《The Independent》는 이 뮤지컬이 피츠제럴드 원작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결여되어 있다’는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기사에 따르면, “뮤지컬은 1920년대의 외형적 상징들을 수집해 화려하게 재현하는 데만 집중했고, 원작이 지닌 시대 비판과 인간 존재에 대한 우울한 성찰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특히 오프닝 넘버 ‘Roaring On’은 닉 캐러웨이의 고뇌를 보여줘야 할 순간에, “크루즈선 쇼를 연상시키는 파티 장면”으로 덮어버렸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이번 한국 뮤지컬 ‘더 그레이트 개츠비’는 런던 무대에서 압도적인 시각적 성취와 강력한 퍼포먼스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폴 테이트 디푸 3세의 무대와 린다 초의 의상, 그리고 배우들의 가창력은 현지 언론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 원작이 가진 섬세한 감정선과 냉혹한 시대 비판을 온전히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런던의 혹독한 평론가들은 ‘더 그레이트 개츠비’가, 화려한 황금빛 외관 속에 텅 빈 내면을 안고 웨스트엔드에 등장했다고 평했다. 대중적이고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매혹될 수 있겠지만, 원작의 무게와 깊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결과로 남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공연의 성패는 평론가들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제작자들조차 예측할 수 없는 마지막 심판은, 결국 관객들의 손에 달려 있다. 앞으로 ‘더 그레이트 개츠비’가 웨스트엔드에서 어떤 길을 걸을지는, 무대를 직접 마주한 관객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뮤지컬 공연 《The Great Gatsby》는 웨스트엔드에 위치한 런던 콜리세움(London Coliseum)에서 2025년 9월 7일(일요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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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과 ‘익숙한 이야기’에 이끌린다
웨스트엔드 관객 설문조사
런던 웨스트엔드(West End)를 찾는 관객들의 티켓 구매 동기에 관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디지털 마케팅 전문 기관 시추에이션 UK(Situation UK)와 런던 극장 협회(Society of London Theatre, SOLT)가 공동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는, 입소문, 유명인 캐스팅, 그리고 친숙한 원작 소재가 관객의 주요 유입 요인으로 확인됐다.
2025년 3월 11일부터 23일까지 2만1천명 이상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런던 극장 관객의 마음속(Inside the Mind of the London Theatregoer)’ 설문조사에 따르면, 83.4%의 응답자가 친구나 가족의 추천, 즉 입소문을 통해 공연을 예매했다고 답했다. 또한, 68.1%는 원작을 알고 있는 작품일 때 티켓을 구매할 확률이 높다고 했으며, 62.6%는 유명 배우나 셀러브리티 캐스팅이 결정적인 요소라고 답변했다.
조사 응답자 중 다수는 ‘데이 트리퍼(day trippers)’로, 런던 외 지역에 거주하지만 2시간 이내 통근권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해 발표된 SOLT의 웨스트엔드 관객 수 성장 정체 보고서와도 연결된다. 여전히 관객들은 극장 방문을 원하지만, 몇 가지 장애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주요 설문조사 결과
● 35세 미만 응답자의 30.8%는 2024년보다 2025년에 더 많은 뮤지컬을 관람하고 싶다고 답했다.
● 전체 응답자의 50.2%가 연극보다 뮤지컬을 선호했으며, 35세 미만에서는 그 비율이 67.6%로 상승했다.
● 60.9%의 런던 거주자와 74.7%의 데이 트리퍼가 웨스트엔드 공연을 더 자주 보고 싶다고 답했다.
● 티켓 가격이 비싸서 관람 빈도가 낮다는 응답이 78.1%에 달했다.
● 공연의 ‘가성비’가 ‘크게 증가했다’고 느끼는 비율은 8.6%에 불과했으며, 티켓 가격만 ‘크게 증가했다’는 의견은 26.2%였다.
런던 극장 협회 정책·연구·홍보 위원회 의장 패트릭 그레이시(Patrick Gracey)는 “우리는 관객 행동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항상 추구해왔다”며, “이번 데이터는 2만 건 이상의 응답을 기반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입소문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티켓 구매 요인임을 재확인했으며, 런던이 세계 연극의 중심지로서 국제 방문객들에게 필수 방문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심야 대중교통 부족”과 “접근성 문제”가 극장 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시추에이션 UK의 어카운트 매니지먼트 총괄 디렉터 피파 벡슨(Pippa Bexon)은 “웨스트엔드 티켓 가격 상승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공연을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욕구도 강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조사가 “극장가에 더 많은 관객을 유입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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