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500만원을 받는 외국계 회사 직원 주모(35)씨의 부인(31)은 열흘 전 친정 어머니와 함께 미국 LA로 떠났다. 출산을 50여일 앞둔 부인이 아이의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원정출산’을 떠난 것이다. 부인은 현지 종합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전문시설에서 산후조리까지 마친 뒤 11월 말쯤 귀국할 예정이다. 100일 정도 걸리는 ‘미 원정출산’ 예산은 약 5000만원. 주씨는 “병원에서 남자 아이라고 하길래 병역문제와 아이 장래가 걱정이 됐다”며 “불편한 몸이지만 부인을 미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미국 등 영어권 국가의 시민권을 얻기 위한 ‘해외 원정출산’이 일부 상류층에서 중산층과 서민층까지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다. 전문업체들에 따르면, 원정출산자는 2001년 3000명, 지난해 5000여명에서 올해 7000여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A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의사·변호사 등 특정계층이 주고객이었지만 일반 회사원이나 상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겨울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예약전화가 하루 수십여건이 걸려온다”고 밝혔다.
대상국가도 과거 미국에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다양화하는 추세다. 이들 나라는 미국처럼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현지에서 출생한 아이에게는 모두 시민권이 부여된다.
B사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원정출산국은 미국이 75%였으나 최근에는 미국으로 떠나는 산모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캐나다와 뉴질랜드로 떠나는 ‘원정출산족’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원정출산족들이 늘어나자 해당국의 ‘한국인 원정출산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원정 출산 임산부의 모든 의료비용이 무료인 뉴질랜드 정부는 3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외국임산부들의 ‘원정 출산’에 대해서는 의료비용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영미권 원정출산 국가 중 뉴질랜드만 의료비가 무료였다. 미국의 경우 원정출산자의 체류기간이 경우에 따라 30일 정도로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원정출산 패키지비용(50일 기준)은 미국은 2500만~3500만원, 캐나다·호주·뉴질랜드 1500만~2500만원이다.
국내에 ‘원정 출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치솟는 사교육비에 이민열풍까지 불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 영미권 시민권을 받게 해주자’는 부모들의 바람이 확산되면서부터다.
원정출산이 확산되면서 관련업체들도 폭증, 원정출산 희망자들을 상대로 출입국 수속, 입퇴원, 산후조리 등을 모두 묶는 ‘원정출산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계약내용과 다른 의료시설을 연결해주거나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 피해사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원정출산 추세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정모(37)씨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 어렵게 이민가느니 차라리 5000만원쯤을 들여 원정출산 한 번 다녀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많다”고 말했다.